해인사 풍경소리
지난 수, 목요일 합천 해인사에 다녀왔습니다. 서울지역에 일시적인 폭설이 내린 날, 이곳엔 밤새 싸락눈이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나무에 매달린 '겨우살이'는 처음 보았습니다. 탁월한 항암효과가 있다는 소문 때문에 관광객 또는 등산객들의 표적이 되곤 한다지만 이곳에선 온전하게 남아 있더군요.
아침햇살에 비춘 산죽 잎과 파란 이끼들이 예뻐서 한 컷.
그런데 이날 오후에 합천 읍내에서 만난 인터뷰이(예순여섯에 학사가 된 데다 시인으로 등단까지 한)가 첫 발간이라며 제게 내민 시집 제목이 <은화(隱花>-이끼-였답니다. 가야산에서 유일하게 목격한 '봄의 증거'였습니다.
'큰 나무가 스러질 때에도 가장 큰 소리를 낸다'고 하지요. 해인사 입구에 있는 성철 스님의 부도입니다.
이 묘탑을 제작한 이는 생전 '큰스님'의 가르침을 더 도드라지게 하기 위해 '미니멀'한 구상을 떠올렸다고 하지요.
하지만 절집에 어울리지 않는, 지나치게 현대적인 조형물이라고 뒷말이 무성했던 모양입니다.
이미 연화세계에 드신 큰스님은 이 설왕설래를 두고 과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일주문에서 봉황문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왼쪽에 보이는 고사목이 신라 때 심어진 느티나무랍니다. 드디어 해인사 경내로 들어서는 해탈문...
자, 들으셨나요? 저 말간 풍경소리들, 바람소리들...
오전 이른 시각이라 그런지 인적 없는 절집 마당이 참 평화로웠습니다.
방하착-放下着-. 근심도, 걱정도, 욕심도 모두 여기 놓아버리라는데요...
'홀로 깨달음을 얻는 곳'이라는 이름이 무척 마음에 듭니다.^^
해인사의 검소하고 수수한 건축미에 비해 비록 작지만 화려한 전각도 눈길을 끌었고요. 팔만대장경판이 모셔져 있는 장경각 뒷마당입니다. 해인사 경내를 빠져나와 언 몸을 녹이려고 찻집을 찾다가.... 상왕봉 정상까지 4km.
한 번 가 볼까 하고 10여 분쯤 오르다가 기권했습니다. 등산화도 신지 않은 데다가 복장이 불량했거든요. 그대, 해인사에 드시려거든 홍류동 계곡 입구에서 부디 차를 버리시기를...
계곡의 물소리와 새소리의 절창, 적송의 솔향기와 풀향기, 그리고 흙내음을 놓치지 않으시려거든 말이지요. 해인사를 빠져나와 입구 휴게소에서 더덕구이로 간단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뒤 4km에 이르는 홍류동 계곡 길을 유유자적, 한 시간 이상 홀로 걸었습니다. 물론 좋았지요.
한 시간 넘게 걷는 동안 한 사람도 인적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왼쪽으로는 가야산, 오른쪽으로는 매화산(남산제일봉)을 끼고 이 아름다운 숲길을 제 발로 걷는 이가 아무도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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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날 저녁, 숙소 근처에서 먹은 산채정식입니다. 제가 사진기를 꺼내 들자 식당(산장식당) 주인이 "혼자 드실 거라 조금씩밖에 담지 않았는데요..." 하며 무척 아쉬워 하시더군요.
여느 왕후의 밥상, 부럽지 않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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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3월, 해인사를 다녀와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