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쉬는 그릇, 옹기
수유리에 있는 옹기민속박물관(2006. 07) . 오솔길 사진
숨쉬는 그릇, 옹기
물을 정화해 주고, 해독을 해주고, 온도 조절을 해주고… 등등.
우리의 생활용기 옹기에는 선인들의 빼어난 생활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옹기는 ‘숨쉬는 그릇’이다. 옛 선인들의 ‘살아있는 생활’ 자체가 그대로 녹아든 그릇이기도 하거니와, 실제 기능적인 면에서도 용기에 나 있는 숨구멍으로 그릇 자체가 숨을 쉰다. 따라서 간장, 된장, 고추장, 김장 등 발효와 저장식품이 주요 식문화를 이루는 우리나라에서 옹기는 생활의 필수품으로 자리잡아 왔다.
선인들은 이 살아있는 옹기에 그들의 삶을 담았다. 사람이 태어난 후 이용되던 태항아리에서부터, 죽어서 사용되는 옹관까지 옹기는 곧 선인들의 생활 자체였다. 때문에 예전엔 뒤뜰의 볕 잘 들고, 바람이 잘 통하는 곳에 정갈하게 놓인 장독대의 옹기를 살피는 것만으로도 그 집 아낙의 살림 솜씨를 엿볼 수 있었다. 또 토담과 잘 어우러진, 한 폭의 그림같은 장독대의 옹기 항아리들은 우리의 아름다운 생활문화를 대변해 주곤 한다. 독 외에도 제기(祭器), 식기, 솥, 주병, 화로, 등화구(燈火具) 등등. 옹기는 생활용기로서 다양하게 쓰여졌다.
살아 숨쉬는 질그릇과 오지그릇
옹기는 무늬 없는 토기에서 유래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시대 때 옹기를 굽는 ‘와기전(瓦器典)’이란 관청이 있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하지만 고려시대로 접어들면서 토기는 생활용기보다는 도자기로써의 역할과 의미가 더 강화된다. 이후 서민들이 주로 사용하면서 저장성이 우수한 생활용기로 옹기가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조선 초기부터다. <경국대전>, <동국여지승람>, <세종실록지리지> 등에 도기소와 옹장에 대한 기록이 다수 전해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실생활에 옹기가 많이 이용되었고, 또 중요도도 한층 높아졌던 것을 짐작케 한다.
옹기는 질그릇과 오지그릇으로 나뉜다. 질그릇은 황토만으로 초벌구이를 하고 유약(釉藥)을 바르지 않아 표면이 거칠고 윤기가 없지만, 오지그릇은 유약을 입혀 윤이 나고 단단하다. 옹기는 진흙에 들어있는 불순물을 다 없애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흙을 물에 풀어 잡물을 없애는 이 과정을 ‘수비’ 라고 부르는데 섬세하고 정교한 형태의 도자기는 이 수비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옹기는 진흙을 파다가 널찍한 곳에 부려놓고 몇 달이고 비바람을 맞게 두었다가 질을 만든다. 이기고, 밟고, 메로 때려 다져진 큰 덩이의 흙은 깨끼낫으로 조금씩 깎아내는 것으로 아주 굵은 모래 정도만 걸러지게 된다. 오지 그릇에 나 있는 숨구멍들은 바로 이 수비 과정의 유무에 따라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가마에서 구워내는 방법도 약간씩 다르다. 옛날의 오지그릇은 가마 안에 바람(공기)과 불길을 자연스럽게 들게 하면서 불을 지폈다. 이를 산화 번조라고 하는데 이 역시 숨쉬는 옹기의 비결과 서로 통한다. 반면에 질그릇은 오랫동안 바람과 불길이 어울려 불 힘이 셀 때 솔가지를 한꺼번에 많이 지피고, 굴뚝과 아궁이를 막아 검댕을 입힌 불완전 환원 번조로 구워낸다. 이 질그릇 역시 숨도 쉬면서 습도를 조절하고, 담긴 내용물의 청정작용을 하는 옹기가 되는 것이다.
또 다른 방법인 환원 번조는 가마에 바람이 들어가지도, 새어나지도 않게 불을 지핀다. 장작을 지펴 가마의 온도가 1100도 이상 올라가면 가마 아궁이와 굴뚝을 막아 공기의 유입을 차단한다. 그러면 흙 속에 있던 쇳가루의 녹이 벗겨지면서 철의 원래 색인 청색으로 변하고, 그릇의 색도 철의 함량에 따라 청색을 머금은 회색에서 회흑색으로 변하게 된다. 우리의 전통 도자기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환원 번조로 구워진다.
천연유 또는 잿물로 옷 입혀
오지 그릇에 옷을 입힐 때 쓰이는 유약은 자연유나 잿물이 주로 이용됐다. 잿물의 원료로는 약토와 솔잎재인 솔가지재가 주로 쓰였다. 이외에도 콩깍지나 풀잎재도 좋은 잿물에 속한다. 하지만 현재는 천연 유약 대신 광명단이라고 하는 화공약품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광명단은 납을 산화하여 만든 것으로 오지에 입혀 구우면 붉은 색이 나고 표면이 유리알같이 매끈하고 광택이 난다. 하지만 이 유약은 산과 열에 약해 잿물과 같은 천연 유약과는 질적인 면에서 비교가 되질 않는다.
약토 잿물을 입혀 잘 구워낸 옹기라도 만든 시기에 따라 그 효과가 조금씩 다르다. 오뉴월에 구운 옹기는 수분이 완전히 빠져나가지 않아 후에 음식이 쉬거나 썩기 쉬워 품질이 떨어진다고 한다. 이 시기에 만든 옹기는 굽기 전 독이 잘 마르지 않거나, 가마도 마르지 않은 상태라 아무리 섭씨 1300도 이상의 고온으로 구워도 그 속에 있는 습기를 모두 걷어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옹기를 살 때는 겨울에 구운 독을 봄쯤에 사는 것이 좋다고 한다. 늦가을이나 겨울에 구운 옹기라도 장을 담가 두어 소금적이 겉으로 배어 나와야 좋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겨울 옹기라도 너무 무거운 것은 좋지 않으며, 색이 불그스름하게 예쁘고, 두드려보았을 때 쇳소리가 나야 좋은 옹기다.
지역마다 각기 다른 형태 지녀
그 옛날, 옹기의 모양새는 지방마다 조금씩 달라 특색이 있었다. 일조량이 많은 남부지방은 입이 좁고 배가 부르며, 서울, 경기를 비롯한 중부지방은 입구가 넓은 대신 보다 날씬한 몸집을 지녔다. 조상들의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활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현재 장독과 항아리, 방구리 뚜껑은 모두 서래기를 쓰지만 몇 십 년 전만 해도 꼭지가 달린 뚜껑이 있었다. 오지 그릇의 종류도 수십 종을 넘어 그 이름만 들어도 구수하고 익살스러웠다. 대독, 중두리, 뱃독, 방구리, 알방구리, 알항아리, 시루, 자배기, 서래기, 뚝배기, 옹배기, 동이, 약탕관, 촛병, 앵병, 청수동이, 옴박지, 알백이, 방퉁이, 꼬맥이, 툭사래기, 학독, 부항단지, 깔때기, 두무, 단지 등 용도에 따라 종류도 가지가지이고 고을마다 이름도 달랐다. 이처럼 옹기는 각기 다른 다양한 형태와 이름에서 옛 선인들의 넉넉하고 풍요로운 마음가짐이 그대로 배어나곤 했다.
신한생명 사외보 <내일을 사는 사람들> 2001년 5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