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이 있다

aA 디자인 뮤지엄 김명한 대표, 시공을 초월한 ‘소통과 공유’

어휘소 2009. 3. 3. 20:58

 

                                                                        <Club KPGA> 사진 

                                                    

 

aA 디자인 뮤지엄 김명한 대표. 그에게 컬렉션은 일상이자 여행이다.

처음 개인적인 관심에서 출발한 그의 컬렉션은 차츰, 황무지와도 같은

우리 디자인 환경에 대한 아쉬움을 담는, 오랜 무의식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지구 어느 편이든, 그가 좋아하는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와 건축 오브제가 있는 곳이면 달려가곤 하는 김명한 대표. 어느덧 그는 빈티지 가구 컬렉터로 살아오길 스무여 해째를 넘기고 있다. 가구 본래의 기능을 잃지 않으면서, 그 안에서 심플함과 검소한 멋을 낼 줄 아는 빈티지 가구들을 그는 즐겨 찾고 있다. 국내외 디자인업계 사람들은 이제 그에게, 이 컬렉션 부문에서만큼은 세계 최고라는 수사를 아끼지 않는다.

 

1900년대 초중반에 주로 만들어지고, 사용됐던 의자와 조명기기 등의 인더스트리얼 가구들. 리빙 관련 소품들. 그리고 1800년대 건축물들에서 사용됐던 문과 창틀 등. 이제까지 그의 컬렉션 작품 수는 대략 10만여 점을 넘고 있다. 2007년 7월,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 앞에 문을 연 ‘aA 디자인 뮤지엄’에서는 그 10만여 점 중에서 일부만이 일반 관람객들에게 선보여 왔다. 전시공간의 리뉴얼과 5월 재오픈을 앞두고, 요즘은 1층 aA 카페에서만 관람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시공을 초월한 ‘소통과 공유’

김 대표가 aA 디자인 뮤지엄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건 바로 ‘소통과 공유’다. 디자인이 별로 중요하지 않았던 시대에,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태어난 아쉬움. 또 그와 비슷한 사람들과의 동병상련. 그의 지나간 시간들. 그리고 다가올 시간의 여정과 그 기쁨이 이곳 aA 디자인 뮤지엄에서 많은 사람들과 공유되기를 그는 바라고 있다. aA라는 네이밍에는 아트(art)와 건축(architecture), 살아있음을 뜻하는 얼라이브(alive) a와, 최고의 점수, 불변하는 고유명사적 가치를 암시하는 대문자 A의 의미가 담겨 있다. 그에게 보물창고와도 같은 이곳은 설계와 인테리어도 그가 직접 담당했다. 건축의 구상부터 설계, 시공, 그리고 오픈까지 5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이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aA 디자인 뮤지엄은 시공을 초월하여, 근현대사에서 내로라하는 디자이너들의 상상력과 교유하며, 노닐 수 있는 제 ‘놀이터’입니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찰스 & 레이 임스,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추었다는 톰 딕슨, 핀 율, 피에르 폴랭 등 세계적인 디자인 대가들의 철학과 그들의 혼, 또한 그네들이 살아왔던 시간과도 공유할 수 있는 그런 공간입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인다.’는 이 말은 김 대표의 컬렉션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김 대표는 영국과 프랑스, 독일, 북유럽 등의 경매시장과 세계가구 전시회 등을 자주 오가면서 이들 세계적인 가구 디자이너, 그리고 딜러들과도 친구처럼 유대관계를 넓히며, 교류해 오고 있다. 때로는 북유럽 어느 보잘 것 없고, 오래된 창고에서, 뜻하지 않게 유명작가의 ‘보물’을 발견했을 때의 그 기쁨이란. 그는 아직도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그렇다고 aA 디자인 뮤지엄이 대가의 작품들로만 채우고 있는 건 아니다. 비록 유명 디자이너의 작품은 아니더라도, 지구촌 곳곳을 걷고 또 걸으면서, 그의 눈에 들어온 이름 없는 디자이너의 가구와 생활 소품들도 많이 있다.

 

그는 덴마크 출신의 디자이너 핀 율(Finn Juhl 19211989)의 가구들을 유독 좋아한다. 이곳 2층에는 그의 작품들로만 꾸며진 전시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을 정도다. 덴마크 디자인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핀 율. 그는 가구 디자인에 있어서 전통적인 방법의 탈피와 새로운 디자인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얻고 있다. 대표적인 그의 작품으로는 포엣(poet) 시리즈와 펠리칸 체어(Pelican Chair) 시리즈가 있다. 지금도 덴마크에서는 그의 디자인 가구들이 주문・생산되고 있으며, 그 판매수익금의 일부는 아프리카 지역을 돕는 일에 사용되고 있다고 김 대표는 전한다. 그가 핀 율 마니아가 된,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그 오브제, 몸에 대해 기억하다

이 aA 디자인 뮤지엄은 각 층별로 전시 컨셉트를 달리하고 있다. 지상 3층에서는 M. 브로이어를 비롯한 바우하우스 시대 거장들의 모던 디자인 가구들을 만날 수 있다. 제1차 세계대전 후 독일에서는 바우하우스를 중심으로 디자인 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 시기에는 과거의 수공예적인 장식 과잉 양식을 배제하고, 기능성에 중점을 둔 모던 스타일의 의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3층에는 또한 2년 전, 이곳의 오픈행사를 축하하기 위해 내한했던, 영국의 대표 디자이너 톰 딕슨의 전시공간도 마련되고 있다. 전시 작품들은 시기별로 교체할 예정이지만, 근현대 가구 디자인의 교과서적인 작품들은 상설 전시한다는 방침이다. 또 지하 1층에는 리빙 관련 생활 소품들이 전시되고, 여기서 직접 판매도 이뤄진다.

 

김 대표의 컬렉션 목록을 눈여겨보면, 유독 ‘의자’가 많다는 걸 금세 눈치 채게 된다. 사실 해외에서 수집한 큰 몸집의 오리지널 가구와 건축 오브제들을 국내로 들여오기란 여간한 공력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의자 컬렉션’에 대한 천착에는 또 다른 뜻도 숨겨져 있다.

 

의자만큼 인간의 ‘몸에 대한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오브제도 없잖아요. 의자는 인간에게 편의와 휴식을 제공해 주면서, 인체공학적으로 완벽하고, 아름다운 조형미를 추구하는 ‘작은 건축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동까지 쉬우니, 제겐 매력 넘치는 컬렉션 대상이 되었지요.

 

 

 

                                                                     aA 디자인 뮤지엄 사진(사진은 1층 카페)

 

다른 층의 전시공간을 둘러보다가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공간, ‘카페 aA’의 의자들 역시 앤티크부터 모던 가구까지 모두 김 대표가 공들인 컬렉션 작품임은 물론이다. 오픈 당시 혹자들은 어렵사리 수집한 작품들을 너무 홀대(?)하는 건 아닐까 염려하기도 했다 한다. 하지만 김 대표는 이제 우리에게도 문화에 대한, 디자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할 때인 만큼 자신의 결정이 옳았다고 믿고 있다. 카페를 찾는 이들이 스스럼없이 만지고, 앉고, 즐기면서 우리 문화도, 디자인도 성숙한다고 믿었던 까닭이다.


 

                                                aA 디자인 뮤지엄 사진

 

유럽의 빈티지와 에스닉과의 만남

의자 외에도 1층 카페에는 눈여겨 볼 건축 오브제들이 참으로 많다. 창문, 기둥, 바닥재, 조명, 가구 등 1900년대 오리지널 오브제의 향연이 이어진다. 테라스 바닥에는 1850년대 프랑스 프로방스 왕족 성의 연회실 바닥에 깔려 있던 타일들이 쓰였고, 1900년대 중반 영국 템스 강변을 비추던 조명등이 운치를 돋운다. 카페 안의 나무 바닥재는 100여 년의 세월 속에서도 아름다움을 더하고 있는 영국산 빈티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멋스러움이 묻어나는 공간이다.

 

“1~2년 후에는 프랑스 파리에도 aA 디자인 뮤지엄을 열 계획입니다. 이곳에는 우리나라 디자이너의 작품들을 주로 전시할 예정입니다. 우리 디자인도 이제 유럽으로 나아가야지요. 요즘 이 파리 프로젝트를 위한 국내 디자이너 발굴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에게 아티스트는 많지만, 실력 있는 디자이너는 많지 않은 것 같아 아쉬워요.”

 

그에게 컬렉션은 곧 일상이자 여행이라고 말하던 김명한 대표. 그는 곧 또 다른 여행길에 나설 예정이다. 이번에는 중국을 경유하여, 태국으로의 여정이다. 김 대표로서는 이제까지와는 조금은 생경한 여행이 될 지도 모른단다. 그동안 유독 유럽지역 빈티지 가구들을 선호해 왔던 그였기 때문이다. 그는 이번 여행을 통해 그 동안 소홀했던 에스닉 컬렉션에 대해서도 눈길을 두어볼 요량이다. 그가 이번 여행에서 돌아온 뒤, 유럽의 오리지널 빈티지 가구와, 동양의 에스닉이 빚어내는 오브제들은 또 과연 어떤 어우러짐일까?

 

1952년생, 곧 예순을 앞둔 그이지만, 영원한 청년처럼 젊게 사는 것이 꿈 말하는 김 대표. 그는 지난해 남성패션 매거진 <아레나 코리아>와 아우디 코리아가 공동으로 제정한, 그해 한국 최고의 남성에게 수여되는 ‘A-어워즈(A-Awards)’를 수상했다.


 

<CLUB KPGA> 2009년 3월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