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왔습니다

얘들아, 너희들은 커서 발해를 꿈꾸거라!! - 강원사대부고 박덕규 교사

어휘소 2009. 3. 11. 09:21

 

지도를 통해 본 한··일의 고대사 인식

 

강원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 박덕규 교사

 

1학년 2반 역사 '마지막 수업' 시간 중

 

                                                          '동북공정' 등 중국의 역사왜곡 프로젝트들을 설명하고 있는 박덕규 교사.       ⓒ 오솔길

 


50분 내내 쉬지 않는 열변이었다. 수업의 주제 또한 묵직했다. ‘지도를 통해 본 한·중·일의 고대사 인식’. 최근 중국과 일본에서 자행되는, 한반도 영토를 둘러싼 고대사 왜곡의 배경과 그 내용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다. 지난 2월 10일. 사실 이날은 2학기 종업식을 이틀 앞두고, 다소 산만해질 수 있는 수업분위기였다. 하지만 박덕규 교사(강원사대부고, 교장 김기중)는 수업 내내, 고조선과 발해의 영토에 대해 열변을 토해냈다. 우리의 고대사를 지키고, 한반도 영토, 나아가 잃어버린 만주 땅을 되살려야 한다며 학생들을 향해 목청을 돋웠다.

 

“최근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에 의한 우리나라의 고대사 왜곡과 날조가 점점 심화되고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그 내용과 심각성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에요. 이제부터라도 우리의 역사인식과, 주변국의 역사인식이 얼마나 다른지, 여러분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어요.

 

  

                   

                                                                                                                                                   ⓒ 오솔길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임나일본부설'

 

"발해가 당나라 영역이었다니요?"

수업은 중국인들이 그들의 역사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박 교사는 학생들에게 55개의 다민족 국가인 중국은, 몽골과 러시아의 연해주, 나아가 투바공화국, 알타이까지 자국의 영토임을 주장하고 있다고 상기시킨다. 특히 이미 언론을 통해 우리에게 잘 알려진 동북공정(2002-2007년) 등 2010년까지 추진되고 있는 중국의 고대사 왜곡 프로젝트에 대해 일일이 설명해 준다. 박 교사는 계속해서 일본에서 주장하고 있는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도 보충 설명이 이어진다. 이는 4세기 후반, 일본이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였다는 주장.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면서 6세기 중엽까지 직접 지배했다는 설이다.

 

 

“이 두 나라의 주장대로라면, 고대사에서 우리 영토는 한반도 중부지역 일부만 남게 돼요. 더욱 ‘충격적인’ 사실은 우리나라 교과서 일부 역사부도에까지 그들의 왜곡된 자료가 그대로 수록되어 있다는 점이지요. 이를테면 고조선 영토(압록강)에까지 중국의 만리장성이 그려져 있는가 하면, 7~8세기 지도에서는 발해가 당나라의 영역으로 표기되어 나옵니다.”

 

이날 수업시간. 박 교사는 학생들의 이해를 높이기 위해 장장 25장의 지도를 준비했다. 중국과 일본, 대만, 홍콩, 그리고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잘못 표기된 7~8세기 한반도 주변 영토에 대한 지도 등이었다. “선생님은 항상 수업준비를 철저하게 해 오세요. 우리들에게 더 많은 것을 가르쳐주시기 위해 언제나 애쓰시죠. 저희들 수업이 점심시간 직후인 5교시라 졸음도 오고, 나른해질 수 있는 시간이지만, 재미있는 역사 이야기도 많이 들려주셨고요.” 한 장 한 장 넘어가던 지도를 보며, 맨 뒤에 앉은 권나연 학생이 기자에게 들려준 귀띔이다. 그때 옆자리의 이소연 학생도 “선생님 수업은 역사에 대한 궁금증과, 호기심이 생기게 해 주셔서 좋다.”며 함께 거든다.


가상여행으로 함께 할 세계사 공부

특히 이날 수업은 강원사대부고 2·3학년 학생들에겐 ‘국사’ 과목으로서는 마지막 수업이다. 2009년 새 학기부터는 역사 과목으로 ‘세계사’를 공부하기 때문이다. 앞으로 학생들의 세계사적인 식견을 높여보자는 취지로 택한 변화다. 이에 따라 박 교사는 올해부터 수업방식도 조금은 달리해 볼 계획이다. 현재 구상 중인 건 ‘세계여행과 함께 떠나보는 세계사 공부’다.

 

“얼마 전에 그리스, 터키, 이탈리아 3국으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세계적인 문화유적지 답사였지요. 직접 여행을 다니면서, 저 역시 살아 있는 역사 공부를 하곤 합니다. 우리 아이들은 당장 떠날 수 없는 형편이지만, 교실 안에서만이라도 열심히 세계의 역사여행 일정표를 만들면서, 더 많은 역사공부를 하게 될 겁니다. 파르테논 신전도 들르고,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대해서도 공부하고요. 그리고 대학 들어가면, 그 일정표 들고 배낭여행도 떠나보라고 할 겁니다.”

 

흔히 역사수업 시간은 지루하거나, 따분하다는 고정관념에 대해 박 교사는 동의하지 않는다. 이날 수업에서 지켜본 동북공정의 예처럼, 그의 수업은 주로 오늘, 즉 현재의 사건들로 그 시작을 연다. 먼저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가령 요즘 학생들에게 이슈가 되고 있는 고교등급제. 여기에다 봉건사회의 신분제도, 그리고 토지제도를 함께 비교하면서, 그 내용과 역사적 의미까지도 함께 고찰해 보는 식이다. 곧 역사의 인과관계를 파악하여, 현재의 삶 속에서 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갖추도록 이끄는 것이다.

 

학생들에게는 텔레비전 역사드라마도 좋은 교재다. 박 교사는 학생들이 역사 드라마만 챙겨서 시청하더라도, 어느 정도 시대적 사건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며 반기고 있다. 특히 역사 속의 인물이나, 사건을 설명할 때 드라마의 예를 들다 보면 수업 참여도와 집중도는 고공 상승한다. 드라마 ‘해신’을 함께 보면서, 장보고라는 인물을 탐구하고, 당시 한·중·일 3국의 무역이나 역학구도에 대해서도 토론시간을 갖는다. 때로는 역사만화도 좋은 부교재로 활용되곤 한다. 친구들과 함께 드라마나 만화에서 등장하는 오류를 하나씩 발견해내는 것도 학생들에겐 흥미 있는 교육활동이 되는 것이다.


좋은 수업은, 학생들을 변화시키는 힘

“수업시간에 제게 들은 한마디 말로 인해 인생의 행로가 바뀌었다는 제자들이 종종 저를 찾아옵니다. 그중에는 결혼식 주례를 서 준 제자도 있고요. 공부를 썩 잘하지 못했던 아이도 있었고, 이른바 문제 학생 소리를 들으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친구도 있었어요. 하지만 지금은 자신의 소질과 적성을 찾아 사회에서 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 나가고 있지요.”

 

그들 중에는 연극무대에서 꿈을 펼치기도 하고, 사업으로 성공하거나, 또 열심히 공부해서 독일로 유학을 떠난 제자도 있다. 교사에겐 ‘좋은 수업’이란, 이처럼 학생들에게 변화를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박 교사는 믿고 있다. 그가 문제의 학생들을 감명시키고, 스스로 변화하도록 이끌어준, 그 한마디가 무엇이었을지 궁금했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능성을 지녔기에 끝까지 믿음을 놓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모든 사람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마지막 순간까지 ‘너를 믿는다, 너는 할 수 있어!’ 라고 말해주는 것이지요.”

 

교실수업의 개선을 위해서는, 이미 개발된 좋은 사례들을 수정·보완하여 자신만의 모형으로 만드는 과정도 중요하다고 말하는 박덕규 교사. 학생들로 하여금 남과 함께 하면서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책임지고, 스스로 해결하는 능력을 갖춘 사람이 되도록 도움을 주는 교사이고 싶단다. 또한 앞으로 학생들의 마음을 읽고, 그들과 더욱 가까이서 소통하기 위해 청소년상담에 관한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을 계획이다.


<꿈나래21> 2009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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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친숙한 소설인,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의 한 장면.

아멜 교사는 어느 날, 프랑스어로 하게 되는 ‘마지막 수업’임을 전하며, 학생들에게 모국어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소설의 배경은, 프랑스령 알자스와 로렌의 영토 귀속문제. 독일과 프랑스가 이 문제로 한창 전쟁을 벌이던 시대의 이야기이다.

 

지난 2월 10일, 강원사대부고(교장 김기중) 1학년 2반 5교시 국사 수업시간. 수업이 끝나갈 무렵, 박덕규 교사는 학생들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

 

“얘들아, 얼마 전에도 지구상에서 서로 치고받고 싸운 나라가 있었어. 어느 나라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이요.”

 

“그런데 두 나라는 왜 싸우는 걸까?”

“영토 때문에요.”

 

소설 속 허구에서든, 실제에서든 이처럼 우리에게 역사는 늘 반복이다.

 

이날 수업이 시작되기에 앞서, 박덕규 교사는 학생들에게 ‘마지막 수업’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마침 이 날은, 3학년 학생들의 졸업식을 하루 앞둔 날이었고, 2학기 종업식도 그 다음날이었다.


이날 수업을 갈무리하면서, 박 교사가 학생들에게 들려주던 당부 또한 퍽이나 인상적이었다.

 

“오늘 이 수업을 들은 여러분 중에 앞으로 우리 고대사에 대해 연구해 보고 싶은, 예비 역사학자가 딱 다섯 명만 나와 준다면 선생님은 더 바랄 게 없겠는데…. 자, 좀 전에 나눠준 백지도에 고조선 영토 그리기는 숙제로 내줄게요. 2학년 올라가더라도, 숙제 확인은 꼭 할 거예요.”

 

예기치 않은 숙제를 받아든 학생들의 원성(?)과 동시에, ‘마지막 수업’ 종료를 알리는 종이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