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마귀들의 거처, 오서산행
찾은 산: 오서산(충남 홍성군 광천읍, 보령시 청소면, 청양군 화성면 일대 소재)
산행날짜: 2006. 11. 11일
산행코스: 홍성 광천읍 상담마을-정암사-오서정-정상-쉰질바위 임도-주차장
겨우 서너 시간을 넘지 않는 산행이라고?
표고가 고작 해야 790m밖에 되지 않는다고?
그렇다고 행여 오서산을 들고 나는 일을 가벼이 여길 일만은 아니었다.
홍성 광천읍 상담마을 들머리에서 정암사를 지나면서,
족히 1시간은 이어지는 된비알의 나무계단.
홍성군은 얼마 전,
오서산 등산로를 재정비하면서 여기에 878개의 나무계단을 새로 만들었다 한다.
오르고 또 올라도 끝없이 이어지던 가파른 계단.
그나마 오서산이 육산이라 다행이었다.
만일 악산이었다면 신통치 않은 내 왼쪽 무릎이
아마도 무장을 단단히 한 채 대반란을 일으켰을 터였다.
하산길의 날머리는 또 어떻고?
평평하게 이어지던 임도를 통한 하산길은
주차장까지의 지름길, 마지막 20여분을 남겨놓고
오를 때 보다 더 징한 급경사를 펼쳐놓았다.
긴장의 고삐를 늦춘, 평이한 임도가 재미없어질 때쯤
다시 한 번, 산행 갈무리의 제 맛을 느껴보라는 배려로
누군가 이 길에 슬쩍 표지목을 세워둔 것 같다.
오전 11:00. 오늘도 전국에 걸쳐 비나 눈이 온다던 예보가 빗나갔다.
하늘은 예외 없이 맑고, 쾌청하다.
서해안 고속도로에서의 정체로 산행시간이 1시간 30분여 지체됐다.
고속도로와 국도를 번갈아 갈아타며 내달려 도착한 곳, 홍성.
서둘러 주차장을 빠져나와 등산로를 찾고 있는데, 온 동네가 왁자하다.
'까마귀들의 거처'에서 유래했다는 오서산 산이름이 실감난다.
한 무리의 산악회가 우리와 같은 시간, 출발을 서두르고 있는 게 보인다.
'우리가 이렇게 산에 들면 바로 오합지졸(烏合之卒)이 되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하며 혼자 피식 웃는다.
등산로엔 오르는 사람, 내려오는 사람 서로 엉키고, 또 길을 양보하느라
산행시간이 다소 더뎌진다.
어느 회사 직원들의 단체산행 프로그램도 있어 산 입구는 그야말로 인산인해다.
오서정.
들머리의 급경사에서부터 기운을 뺀 산행객들이
편히 쉬며 숨고르기를 하는 주능선의 정자다.
정자 근처까지 오면서 이곳이 정상인 줄 알았는데, 정상석이 보이지 않는다.
앞에 써 있는 이정표에는 정상까지 다시 0.9km다.
초반에서 있는 힘을 다 소진시켜버리게 했던 오서산.
몸 상태로는 마치 서너 시간 산행을 한 느낌인데
참으로 얄궂다는 생각을 한다.
지나가던 한 등산객이 내뱉던 말이 꼭 내 맘 같다.
“여기가 정상 아니었어?”
‘우리도 여기서 그냥 사진 찍으면 안 되나?’
누군가의 속마음을 뒤로 한 채, 행군은 계속됐다.
오서정부터 정상까지 주능선 양옆으로는 이미 많은 단체 등산객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점심을 먹거나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도 사진을 찍고, 산행 들머리에서 산 복분자주와 떡 등을 나눠먹으며
간단한 점심 겸 휴식을 취한다.
나와 대원들은 비로소 주능선의 은빛 억새물결,
멀리 대천해수욕장, 천수만 등 서해바다를 찬찬히 조망하는 여유를 가져본다.
오후 1시 30분을 전후한 하산 길.
오르던 길 대신, 산허리를 휘감으며 닦인 임도를 따라 걷기로 한다.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마니아들이 자주 찾는 곳인 듯 어렵지 않게 그들을 만난다.
내려가는 길 입구엔 쉰질바위로 표시되어 있다.
산행 초입의 급경사를 생각하니,
이곳은 웬 천국인가 싶을 만큼 길이 유순하고 편하다.
하산 후 뒤풀이를 위해 찾은 광천 남당리.
대하 집산지답게 막 끝난 듯한 대하축제 깃발이
길가 여기저기서 나부끼고 있다.
대하, 소라, 키조개, 산낙지, 꽃게탕 등등 주문한 메뉴들이 차례로 나온다.
소금 위에 올려진 살아 있는 새우의 마지막 안간힘을 지켜보며,
나는 배한봉 시인의 ‘육탁’을 떠올린다.
‘저렇게 살아보겠다는 녀석을...쯔쯔...’
육탁(肉鐸)
배한봉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
......
하지만 이런 어줍잖은 생각도 잠시,
빠알갛게 잘 익은 키틴질 겉껍데기 속에 숨어 있는
새우의 속살 맛은 정말이지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