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제주 검은(금)오름에서 - 나비의 여행
어휘소
2010. 8. 15. 12:25
나비의 여행
정한모
아가는 밤마다 길을 떠난다.
하늘하늘 밤의 어둠을 흔들면서
수면(睡眠)의 강을 건너
빛 뿌리는 기억(記憶)의 들판을,
출렁이는 내일의 바다를 날다가
깜깜한 절벽
헤어날 수 없는 미로(迷路)에 부딪히곤
까무라쳐 돌아온다.
한 장 검은 표지를 열고 들어서면
아비규환(阿鼻叫喚)하는 화약 냄새 소용돌이.
전쟁은 언제나 거기서 그냥 타고
연자색 안개의 베일 속
파란 공포(恐怖)의 강물은 발길을 끊어 버리고
사랑은 날아가는 파랑새
해후는 언제나 엇갈리는 초조
그리움은 꿈에서도 잡히지 않는다.
꿈길에서 지금 막 돌아와
꿈의 이슬에 촉촉이 젖은 나래를
내 팔 안에서 기진맥진 접는
아가야!
오늘은 어느 사나운 골짜기에서
공포의 독수리를 만나
소스라쳐 돌아왔느냐.
* 2010년 6월 16일, 제주 검은오름서 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