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왔습니다

‘인생삼락(人生三樂)’, 그 세 번째 즐거움 - 강기룡 선생님

어휘소 2008. 8. 13. 00:39
 

올해로 교직생활 21년째를 맞이하는 강기룡 교사(경기도 고양시 일산은행초등학교)는 연중 설과 추석날, 이틀을 제외하곤 매일 학교에 출근한다. 학교가 쉬는 주말과 공휴일, 방학에도 빠지지 않고 출근을 하는 것이다. 그가 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린 데 대한 대답은 짧지만, 분명했다. ‘사랑과 열정을 쏟으면, 그것만큼 행복이라는 이자로 반드시 되돌려받는 곳’. 그런 확고한 신념 때문이었다. 강 교사는 학교가, 자신이 선택한 교육 현장이 바로 그러한 곳이어야 한다고 믿으며 20여 년째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그의 교육자적 신념에 화답하듯, 강 교사는 지난달 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으뜸교사’로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으뜸교사상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수업과 인성교육, 학생지도 등에 탁월한 역량을 발휘한 ‘참스승’을 찾아내 인증하고 영예를 부여하기 위해 올해 처음 도입한 상. 올해 첫 해로 전, 현직 교사 18명이 ‘으뜸교사’로 선성된 것이다. 이날 강 교사는 ‘으뜸교사’에게 주어지는 ‘홍조근정훈장’도 함께 받았다.

 

“늘 어떤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수업시간을 선물할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이 지루해하지 않으며 수업시간에 몰입할 수 있는, 그런 수업모델을 만들어가려면 교수학습지도 개선을 위한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교과서의 평균적인 학습목표에서 미처 담아내지 못하는 배경지식들을 하나라도 더 아이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교사는 다양한 학습 자료들을 발굴하고 또 준비해야 해요.”

 

그는 수업방법이 새로우면 학생들의 학습 속도와 흥미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준다. 그 방법은 조금만 노력하면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예로 인터넷의 적절한 활용만으로도 학생들의 흥미유발로 인한 수업의 내용과 질은 확연하게 그 성과가 달라진다고 굳게 믿고 있다.


‘인생삼락(人生三樂)’, 그 세 번째 즐거움

그가 유독 열정을 쏟았던 서예활동으로 이뤄지는 방과 후 수업시간. 학생들에게 한 획 한 획 붓글씨를 가르치다 보면, 맹자가 일갈했던 ‘인생삼락(人生三樂)’ 중 영재를 가르치는 그 일에 대한 즐거움을 제대로 만끽하곤 한단다. 방과 후 서예지도는 교직 첫 부임지였던 전남 진도에서부터 16년째 계속해 온 일이다.

처음 붓을 쥐고는 삐뚤빼뚤하며 획을 그려가던 아이들. 하지만 한두 달 시간이 지나면서, 일취월장하듯 ‘꼬마 서예가’로서의 실력을 뽐내는 제자들을 발견할 때면 그도, 그리고 학부모들도 깜짝 놀랄 때가 많았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이 쓴 서예작품을 바라보며 “이것이 네가 쓴 붓글씨가 맞니?” 하고 묻곤 하였다. 어느 때는 시 주최 대회에 참가, 그가 지도한 한 반의 아이들이 금상, 은상, 동상을 모두 차지하는 경사를 맞은 일도 있었다. ‘인생삼락(人生三樂)’의 영리한 제자들 이야기를 나누다 불현듯 강 교사는 4년 전, 한 학부형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얽힌 사연을 떠올렸다.

 

“10년 전, 어린 재원이는 반에서 항상 눈에 띄는 모범생이었어요. 성적도 늘 일등을 놓치지 않으면서, 언제나 책을 가까이했었어요. 그런 기특한 재원이에게 격려와 함께, 그가 앞으로 살아가게 될 더 나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자주 들려주곤 했었지요. 그런 제자였기에 항상 기억에 남아 있는 아이였어요.”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까. 강 교사는 넉넉한 집안형편이 아니었던 재원이가 부모님의 형편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4년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생이 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그리고 다시 3년 뒤. 어재원 군은 졸업을 1년 남긴 채 사법고시에 최종 합격했다는 반가운 소식을 초등학교 시절 선생님께 가장 먼저 알려왔다. 어머니의 감사 전화도 함께였다. 각별한 관심으로 지켜보던 코흘리개 어린 제자의 그 성취가 강 교사는 마냥 뿌듯하고, 또 고맙게 느껴졌었다.


2005년 ‘세계창의력올림피아드’서 르네상스 상 수상

강 교사는 요즘 학생들의 창의력을 키워주는 ‘발명교육’에도 매진하고 있다. 서예(그는 서예대전에서 여러 차례 입상한 상당한 솜씨의 서예가이기도 하다)에 이어 그가 두 번째로 선택한 프로젝트다. 이는 초등학교 시절 은사이자, 평생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외숙부의 주문사항 중 하나였다. 외숙은 항상 조카에게 실력 있는 교사가 되라고 주문했다. 그러려면 앞으로는 초등학교 교사라도 먼저 경쟁력 있는 주지과목 1과목은 반드시 실력을 갖추어 놓아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서예도 그렇게 해서 시작하게 된 거였다. 처음에는 영어과목으로 정할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었지만, 어려운 가정형편에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따로 비용을 들일 여유가 없었노라며 그는 당시를 회고했다.

 

‘교사는 모름지기 수업을 잘 해야 한다’는 게 강 교사의 신조였다. 그렇게 되기 위해 그는 수업 잘 하는 선생님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또 지도받았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가 그에게도 ‘수업 잘 하는 교사가 될 수 있겠구나’ 하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방과 후 발명과 창의성 교육이 그렇게 해서 열매를 맺게 된 것이다. 그는 이 부문에 관한 한 이제 교사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맡는 지도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 학생들과 함께 발명에 대해 공부하면서 창의력을 키우는 데 이보다 더 좋은 체험학습은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왜 좀더 일찍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을까 아쉬움도 없지 않았어요. 각종 경시대회를 앞두고는 학생들과 밤늦게까지 불을 밝히며 발명과 창의력을 키우는 공부와 토론을 하곤 합니다.”

 

그는 2005년 5월, 미국 테네시대학교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창의력올림피아드’에 한국 대표단을 이끌고 참가해 르네상스 상(특별상인 금메달)을 수상했다. 역대 한국 참가팀 중 최고 성적이었다. 그해 세계 창의력올림피아드의 주제는 다리 구조물을 창의적으로 만들어 공연과 함께 측정하는 것이었다. 강 교사는 먼저 전 세계 다리를 모두 조사하고, 탐구하였다. 이 분야의 전문가도 초청하여 지도도 받았다. 이 대회에서 한국팀은 창의적으로 해결한 다리 구조물, 공연, 그리고 현장과제를 종합하여 참가팀 중에서 최고성적을 받았다. 대회 때 사용할 수 있는 재료는 발사나무와 접착제, 그리고 낚싯줄뿐. 이 제한된 재료로 만들어진 다리 구조물은 가장 예술적이면서 또한 가장 견고하다는 평가였다. 그때 제작했던 미국 뉴욕의 브루클린 다리는 현재 대회본부였던 테네시대학교에 전시되어 한국 창의력의 현주소를 알리는 한 모델이 되고 있다.


발명교육과 함께 ‘창의적인 학교’ 세우는 꿈 키워

“당시 대회에 참가했던 경기도 파주의 검산초등학교 10여 명의 학생들과 저는 수상 소식을 알고 서로 얼싸 안으며 환호와 기쁨의 눈물의 흘렸었습니다. 특별상인 르네상스 상만큼은 그 전 대회에서도 수상팀을 내지 못했을 정도로 까다롭고 엄정한 심사로 정평이 나 있었거든요.”

 

이 발명과 창의성 교육에서의 성과로 그는 ‘신지식인상’을 수상하는 영예도 함께 안았다. 이와 관련하여 강 교사의 꿈은 지금 좀더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시간이 지난 뒤, 여건이 충족되면 그는 창의적인 사고를 가진 친구들끼리 모여 자그마한 규모의 ‘창의적인 학교’를 만들면 어떨까,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 학교가 세워지고 난 뒤에는 학교의 문패 역시 가감 없이 ‘창의적인 학교’라고 지으면 어떨까? 강 교사는 그런 생각만으로도 요즘 마냥 설레고, 행복해진다고 했다.

기자가 일산은행초등학교를 방문한 날, 그가 담임을 맡고 있는 6학년 1반 교실의 칠판 한켠엔 이런 슬로건이 적혀 있었다. ‘내가 하면 다릅니다. 내가 하면 일류가 됩니다.’ 학생들에게 ‘세상을 바라볼 때 남과 다르게 보라’는 주문을 한다는 ‘으뜸교사’. 강기룡 교사의 가르침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 교육인적자원부 발간 <교육마당21> 2007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