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신한생명 사외보
<내일을 사는 사람들> 2001년 5월호에 실렸던 인터뷰입니다.
'자기다움, 그리고 그다움'
조운호 사장
한 평범한 은행원으로 출발하여,
이젠 한 해 매출 2천7백억 규모 음료업체의 최고경영자가 된 웅진식품 조운호 사장(40).
웅진식품 사장실에서 만난 그에게서
이 땅, 우리의 곡물로,
전 세계인이 함께 즐겨 마실 수 있는 ‘우리 음료’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들을 수 있었다.
지난 해 국내 음료업계에서는 하나의 커다란 ‘사건’이 있었다. 세상에 첫 선을 보인 한 매실음료가 출시 첫 해에 매출 천억 원을 거뜬하게 넘겨버린 것이다. 한 해 총 2조5천억 원이 넘는 음료 시장에서 여태껏 한 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이 사실은 당연히 세간에 큰 뉴스가 될 수밖에 없었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웅진식품 조운호 사장의 집무실엔 지난 한 해 동안 각종 언론 매체에서 선정한 그 해 최고의 히트상품 기념 상패가 한 쪽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판매전에서 마치 전장(戰場)을 방불한다는 국내 음료 시장. 여기에서 건져 올린 이 빛나는 ‘전리품’들은 모두 한 평범한 은행원에서 일약 국내 빅3 음료업체의 최고경영자로 변신한 조운호 사장이 일궈낸 성과물들이다.
처음으로 쌀음료 ‘아침햇살’을 내놓아 과일, 야채, 탄산, 커피음료가 주류를 이루는 국내 음료업계에 곡물음료의 신기원을 연 조운호 사장. 그가 한국산 브랜드로 세계 음료시장을 석권해 보겠노라는 도전은 사실 지금부터다. ‘아침햇살’부터 ‘초록매실’, ‘쑥의 향기’로까지 이어지는 3연속 히트상품의 성공, 그리고 지난 4월초 N세대를 겨냥해 새롭게 출시한 ‘피앙세’까지. 이 새로운 제품까지 종전의 세 음료가 거머쥔 히트상품의 대열에 합류한다면 그는 아마도 국내 음료시장의 최단기 ‘4연속 히트상품 제조’라는, 이른바 ‘음료업계 그랜드슬램’의 영예를 차지하는 최초의 주인공이 된다.
“우리 음료 브랜드도 세계 시장으로 나가야죠”
“지금까지의 음료 산업은 고객의 영양과 입맛을 고려하기보다는 철저하게 생산자 중심으로 움직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오렌지 음료만 봐도 100%니, 50%니 하면서 생산자의 편의대로 음료를 생산해 왔지요. 그래서 제가 고민한 것은 고객이 중심이 되는 제품의 개발이었습니다.”
그의 이러한 고객중심 지향의 새로운 음료에 대한 컨셉은 5월 초 선보일 ‘오렌시아’(오렌지와 본질이라는 뜻의 ‘엔시아’가 합쳐진 말이다)에 모두 담아냈다고 한다(이 프로젝트는 제품이 첫 출시되기 직전까지 대외비에 부쳐지고 있다고 조 사장은 강조했다. 하지만 <내일을 사는 사람들>이 출간되는 시점과 런칭 시기가 비슷하다며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이번에 선보이는 오렌지 음료는 바로 고객의 입맛에 딱 맞도록 ‘황금비율’을 맞춘 것이라고 조 사장은 자랑한다.
최근 음료업계에서는 조운호 사장이 내놓은 새로운 이론 하나가 화제다. 한 마디로 ‘용기(容器)론’이다. 어느 강연에서 우리 음료의 세계 시장 진출에 대해 했던 말이 일간지에 소개되면서 ‘조운호의 용기론’으로 발전한 것 같다며 그는 웃었다.
“음료산업의 역사는 약 1백년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바로 음료를 담아낼 용기, 곧 그릇의 역사와 맥을 같이합니다. 가지고 다니기 편리하고, 오랜 기간 저장이 가능한 병과 알루미늄 캔이 등장하면서 음료산업은 비로소 싹트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1백년 전이라고 우리 인류가 음료를 마시지 않은 건 아니죠. 오렌지 음료나 콜라와 같은 주요 음료 시장을 미국이나 서구에서 쥐고 있는 건 바로 이들이 음료를 담는 용기를 개발했기 때문이지요.”
미국보다 먼저 한국이 병과 캔을 만들기 시작했다면 아마도 세계 음료 시장의 주도권은 현재 한국산 브랜드가 쥐고 있었을 거라는 이야기다. 이는 곧 ‘아침햇살’이나 ‘초록매실’, ‘하늘보리’ 같은 한국의 음료 역시 세계적인 브랜드가 될 수 있다는 게 조운호 사장의 설명이다.
실제로 얼마 전부터 외국 한 항공사의 기내 음료로 웅진식품의 보리음료 ‘하늘보리’가 납품되기 시작했다. 그의 ‘용기론’을 입증하는 실례인 셈이다. 예로부터 가정에서 주전자에 끓여 마시던 보리차를 캔이나 병에 담아 놓으니 수요가 생기더라는 것이다.
지난 해 여름 선보인 이 보리 음료 개발을 위해 조 사장은 현재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보리차 팩 시장을 조사하고, 또 분석했다고 한다. 그 결과, 앞으로 보리 음료에서 약 5조원의 시장이 형성될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한다. 이 확신은 이웃 일본의 음료 시장에서도 검증됐다고 조 사장은 말한다. 일본의 차 문화에서 비롯된 차음료 시장은 이미 30%의 시장 점유율을 넘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해 웅진식품의 총 매출은 2천7백억 원을 기록했다. 그가 처음 사장에 취임하던 99년의 25억 원과는 비교할 수 있는 눈부신 성과다. 지난 해 웅진식품의 매출액 증가율은 국내 기업 가운데 10위를 차지했다. 올해 매출 목표 역시 지난 해의 두 배인 5천억 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으로 5년 안에 저희 회사의 매출을 5조원으로 끌어올릴 계획입니다. 그리고 10년 후엔 현재 세계 음료 시장에서 가장 큰 덩치를 자랑하는 다국적 회사의 한 해 매출액인 20조원에 도전할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고 이야기들을 합니다. 그러나 꼭 이루어내고 말 겁니다.”
현재 ‘아침햇살’과 ‘초록매실’ 등 웅진의 음료들은 일본, 홍콩, 동남아는 물론 호주, 미국 등 세계 15개국으로 수출되고 있다.
주위에서는 그를 두고 타고난 승부사라고 말한다. 그가 중학교에 다닐 때 부친이 세상을 뜨고 가계가 어려워지면서 그는 고교 진로를 인문계가 아닌 상고로 정했다. 상고의 선택은 곧 대학진학을 포기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대학에 진학해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취직공부와 함께 뒤늦은 대입 준비를 병행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그리고 고교를 졸업할 즈음 은행원과 대학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기쁨을 맛보았다.
패기만만하던 청년 시절, 누구에게든지 좀처럼 지고는 못살았다는 그의 승부근성에 얽힌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친구들과 함께 담배를 처음 배우던 때였다. 다른 친구들은 모두 멋있게(?) 담배를 피우는데, 그 혼자만 입담배를 피운다고 친구들이 핀잔을 주곤 했다. 그 때 친구들에게 지는 것이 싫었던 그는 혼자 몰래 산에 올라가 몸이 기진맥진해질 때까지 담배 연기 들이마시는 연습을 해야 했다.
그의 승부사로서의 기질은 9년 동안 몸담았던 안정적인 은행원의 자리를 박차고 나올 때도 어김없이 발휘됐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안정적인 일자리를 그만두는 것을 걱정했지만, 고교 시절 절친한 친구였던 김영추 현 웅진식품 영업본부장의 권유대로 미련없이 이직을 선택했다.
지난 90년 웅진그룹에 입사, 재무 관련 업무를 맡던 조 사장이 웅진식품으로 자리를 옮긴 건 그로부터 5년 뒤인 95년. 이때까지만 해도 웅진식품은 이렇다 할 음료 브랜드 하나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던 시기였다.
그런데 그 해 10월, 어느 누구도 예상치 못한 신제품 하나가 탄생을 알리게 된다. 바로 ‘가을대추’였다. 당시 기획실장으로 있던 그가 기획한 첫 제품이었다. 브랜드 네이밍부터 광고 카피까지, 어느 한 부분 그의 아이디어와 기획력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당시 그가 썼던 ‘가슴까지 적시는 음료’라는 광고 문구는 ‘가을대추’ 만큼이나 광고제작인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었다.
‘가을대추’라는 우리 음료 개발로 승승장구하던 웅진식품은 그러나 잇단 신제품 개발 실패로 누적 적자 4백억 원의 기업으로 부도 직전의 위기를 맞이하고 만다. 설상가상으로 신제품 개발 등 기업의 진로를 두고 당시 새로 영입한 경영진과, 기존의 기획실과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면서 조운호 기획실장 역시 웅진식품을 떠나 있게 된다.
그로부터 2년 뒤인 98년, 그룹 윤석금 회장으로부터 그에게 다시 위기에 처한 웅진식품을 살려내라는 임무가 주어지면서 그는 웅진식품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이듬해, 그의 주도 하에 ‘아침햇살’이라는 초히트 상품을 만들면서 웅진식품을 다시 화려한 부활을 꿈꿀 수 있는 회사로 키워냈다.
전 세계인이 즐기는 마실 거리
조운호 사장에겐 여러 개의 별명이 따라다닌다. 잇달아 내놓는 히트상품 덕에 언론에서는 ‘히트상품 제조기’로, 그리고 사내에서는 그의 저돌적인 업무 스타일로 인해 ‘생각하는 불도저’로 불리곤 한다. 그리고 학교 다닐 때 그는 친구들 사이에서 ‘철인’이라는 별명으로 통했다. 대학 진학을 위해 코피를 쏟아가며, 낮밤 가리지 않고 공부하는 그를 친구들은 ‘철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올해 마흔 살인 그는 평소 입버릇처럼 “나에겐 여러 명의 자녀가 있다”고 말하곤 한다. 그리고 해마다 그 숫자는 바뀌고 있다. 그의 말대로라면 올해 그의 자녀수는 이미 여덟 명을 넘어섰다. 실제 두 자녀 외에 그가 직접 기획을 하고, 제품이 탄생하기까지 아이를 낳는 것과 똑같은 산고(産苦)를 겪으면서, 또 ‘아침햇살’이니, ‘초록매실’이니 하는 예쁜 우리 이름까지 손수 지어주었으니 이들 모두가 사랑스런 아들이고, 딸이라는 그의 말이다. 또 앞으로도 그는 수 십 명의 자녀를 더 두게 될 예정이라며 웃는다.
“세계 음료 시장에서 한국을 곡물음료의 발상지로 만들 계획입니다. 어느 누구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우리 브랜드의 음료를 만들어 세계로 나아가야지요. 바로 2002년 월드컵이 코 앞에 닥쳐오고 있는데 외국 손님들에게 그들 브랜드의 음료만 마시게 해서는 체면이 서지 않을지도 모르지요.”
이제 국내 뿐 아니라 전 인류가 함께 즐길 수 있는 ‘마실 거리’가 필요할 때라고 그는 말한다. 그리고 그 맨 앞에 ‘조운호’ 라는 그의 이름 석 자가 늘 함께 하길 그는 바라고 있다. 누구든지 자신이 맡은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 보기 좋아 ‘자기다움’이라는 말을 즐겨한다는 조운호 사장. 그의 세계를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다.
글| 오솔길
'C.E.O 인터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볼빅 문경안 회장, "히든 챔피언 기업, 볼빅 만들 겁니다!" (0) | 2010.08.19 |
---|---|
장승의 표정 카메라에 담는 이동석 씨 (0) | 2010.02.11 |
'아주 특별한 음악여행', 삼호아트센터 이윤희 이사장 (0) | 2008.09.01 |
‘애지, 욕기생(愛之, 欲其生)’ - 경기방송 우제찬 사장 인터뷰 (0) | 2008.08.12 |
가수 이상우-발달장애아 후원 사회복지재단 만든다 (0) | 2008.06.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