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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포라이프 용미중 대표, “음악과 요리로 봉사할 수 있으니 감사하죠"

어휘소 2008. 11. 6. 16:44

 

“음악으로, 요리로 봉사할 수 있으니 감사하죠”

 

 

주방에서 막 나와 손님을 맞으며, 그녀가 웃고 있었다. 그녀에겐 하얀 요리사 복장도 퍽 잘 어울렸다. 아마도 이건 다분히, 인터뷰어의 선입견이 작용한 탓이리라. 그녀를 만나 인터뷰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먼저, 화려한 무대 위 드레시한 모습으로 플루트를 연주하는 미장센을 떠올려야 했으니까. ‘아트포라이프 자원봉사회’ 용미중 회장, 그녀가 이번에는 ‘꽃보다 아름다운’ 인터뷰이다.

 

    

 

        

                                                  아트 포 라이프 자원봉사회 운영위원회 중

 

  

           종로구 부암동 언덕길 '아트 포 라이프' 입구                            ⓒ 오솔길           

 

                                       '아트 포 라이프' 레스토랑에서…   ⓒ 오솔길

  

서울 종로구 부암동 북악산 자락에 있는 레스토랑 ‘아트 포 라이프’(Art for life). 그곳의 요리사이자 주인인 용미중 대표는 2년 전까지 서울시립교향악단의 플루트 연주자였다. 그녀의 남편인 성필관 관장(매주 토요일마다 하우스음악회를 열고 있는 공간 ‘아트포라이프’의 대표다) 역시 서울시향 수석 연주자이자, 오보이스트로 함께 활동했다. 흔히 요즘 세상의 잣대대로 말하자면, 이른바 ‘잘나가는’ 음악가부부다.

 

그러나 정작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는 이 칼럼에 용미중 대표를 인터뷰이로 떠올린 까닭은, 그녀가 음악을 사랑하는 예술가이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녀는, 4년 전부터 ‘아트포라이프 자원봉사회’를 만들어 이끌고 있다. 지난 3월부터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서울애화(愛話)학교에 나가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쳐준다. 또 현재 부모를 잃거나, 어려운 처지에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 30명을 내 자녀처럼 돌보는 중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계속하기 힘든 재능 있는 후배 음악인들에게 기꺼이 후견인이 되어주고 있다. 아트포라이프의 후원으로 스페인에 유학 중인 한 성악가 후배는 얼마 전, 국제적인 권위의 콩쿠르에서 입상, 그녀 부부를 기쁘게 했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처음 시작된 봉사활동

아트포라이프 레스토랑 한켠에 자리를 잡고 앉아 <함께하는 사랑의 길> 지난 호를 그녀 앞에 내밀었다. 인터뷰 칼럼명이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라고 하자, 그녀는 ‘제게는 어휴, 과분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그렇지만 독자들이 궁금해 할, 그녀가 나눔과 봉사의 삶을 선택하게 된 계기를 먼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사실, 용미중 대표와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다. 2년 전 여름, 필자가 다른 매체에 기고하기 위해 성필관 관장을 인터뷰하면서 잠깐 인사를 나눴더랬다. 이들 음악가 부부가 사는 부암동 한옥은 신문과 잡지에 ‘아름다운 집’으로 이미 여러 차례 소개가 됐다. ‘삶을 축제처럼’ 살아가길 소망하는 예술가 부부. 이들은 부암동 산비탈길 예스럽고 멋들어진 한옥 옆에 콘서트홀과 레스토랑을 지어, 매주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다.

 

“15년 전에 호스피스 병동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말기 암 환자의 임종을 지킨 적이 있었어요. 생의 마지막, 그 중요한 순간에, 제가 연주하는 음악을 들으면서 눈을 감는 모습을 뵈었지요. 그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제가 사는 동안, 누군가에게 값지고 의미 있는 것을 함께 나누는 삶으로 살아가면 어떨까 하고요.”

 

또 어느 날엔가 여덟 살, 여섯 살 어린 남매를 남겨두고 떠나야 하는, 한 어머니 암 환자 앞에서 그녀는 ‘평생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되어 주겠노라’는 약속을 했더랬다. 나눔과 봉사의 삶에 대한 용미중 대표의 이러한 약속들이 보다 구체화된 시기는 지난 2004년 10월 무렵이다. 그녀와 뜻을 같이하는 음악가, 또 이곳 공연장을 찾는 의사와 기업가, 종교인 등 15명이 주축이 되어 ‘아트포라이프 자원봉사회’를 출범시킨 것이다.

 

“저소득층 말기환자 가족 자녀들에겐 장학금과 교육 적금, 장기보험을 18세까지 지원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돕고 있어요. 또 부모가 없는 청소년들에겐 물질적 후원 외에도 자주 찾아가 한가족처럼 관심과 사랑을 나누어주고 있고요.”


서울애화학교에서 하는 요리 강의 봉

지난 3월부터 용미중 대표는 서울 미아동에 있는 청각장애인 학교인 서울애화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요리를 가르친다. 프로그램의 이름도 새로 하나 만들었다. ‘하늘빛 요리학교’라고. 처음에는 수업의 성과에 대해 염려도 없진 않았지만, 수업 횟수가 늘어날수록 학생들과 선생님 모두가 만족스런 수업이 진행 중이다.

 

“그곳의 원장 수녀님께서 학생들을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고 제게 부탁을 해 오셨어요. 그 후 설문조사를 해서 요리사가 꿈인 학생 10명을 제가 직접 뽑았지요. 이 친구들은 후에 요리사로서 자립할 수 있는 기반을 꼭 만들어 줄 거예요. 학생들 중에서도 부모님이 정부의 생활보조금을 받는 아이들은 그래도 좀 형편이 나아요. 아이들을 집에 둔 채 가출한 어머니, 병색이 깊어진 아버지 등. 가슴 아픈 사연을 가진 아이들이 참 많아요.”

 

요리실습 시간, 학생들과의 소통은 주로 수화로 이뤄진다. 하지만 수화가 서툰 용미중 대표도 소통에 거의 불편함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요즘에는 소통이 자유로워졌다. 그 10명의 학생 중 한 명인 성림이는 지난 두 달여 동안 이곳 레스토랑 주방에서 현장 실습을 해왔다.

 

“저와 함께 요리 실습을 하면서, 식재료의 이름과 요리방법 등을 모두 노트에 적도록 했지요. 일테면 ‘딸기’를 입모양으로 알려주고, 노트를 시키면서 그 이름을 외우게 하는 식으로요. 이렇게 식재료들을 하나하나씩 구화(口話)로 알려주다 보니, 이젠 주방 식구들과 거의 불편 없이 소통이 되고 있어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이 제 힘으로 그 장애를 딛고 이겨낼 수 있도록, 오랜 시간 참고 기다려주는 게 필요하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다. 용미중 대표 역시 현재 프랑스의 요리전문학교 ‘르 코르동 블뢰(Le Cordon Bleu)’에 입학, 요리를 배우는 중이다. 이미 요리사 자격증은 따 두었지만, 프랑스식 정통요리를 제대로 배워보기 위해서다. 내년 1월에는 또 서울애화학교 학생 몇 명을 인솔하여 이탈리아로 날아갈 예정이다. 그곳의 정통 피자와 파스타 요리를 학생들에게 가르쳐주기 위해서다.


 

“봉사회의 네트워크 센터 만들고 싶어요”

 “교향악단의 플루티스트라는 직업과, 그 무대는 물론 매력이 넘치는 곳이에요. 그런데 연주회가 끝난 뒤, 그 무대를 기억해주는 청중이 과연 몇이나 될까, 그렇게 되묻고 싶던 때가 분명 있었어요. 저는 지금 아트 포 라이프의 작은 콘서트홀에서 진정으로 음악을 사랑하는 분들과 얼굴을 마주하며 나누는 교감과, 그 우정이 정말 좋아요. 이 자리를 통해서 봉사와 나눔을 함께하실 분들도 만날 수 있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게 없지요.

 

매 주말 오후 5시면 열리는 아트포라이프의 ‘해질 무렵의 연주회’. 이 공연이 끝나고 뒤풀이는 공연장 아래층에 있는 레스토랑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막이 오른다. 그날 메인 연주자의 앙코르 공연도 있고, 성필관·용미중 부부가 직접 연주자로 나설 때도 많다. 주로 객석의 요청에 의해서다. 이때 용미중 대표가 플루트와 함께 무대에 오를 때면, 객석에선 놀라는 이도 더러 생긴다고 한다. 방금 전까지 손님들에게 음식을 나르던 그녀가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플루티스트였다는 사실에 놀라고, 그녀가 이곳의 ‘사장님’이라는 사실에 두 번 놀란단다.

 

“저희 레스토랑에 오시는 손님 중에도 간혹 그런 편견을 가지신 분이 계신 것 같아요. 식당에서 음식을 나르는 저나 플루트를 연주하는 저, 모두 똑같은 인간의 모습이잖아요. 그런데도 묘한 차별의 시선이 느껴질 때가 있어요. 사람을 대하는 태도가 금세 달라지죠. 얼마 전, 필리핀 이주여성의 딱한 소식을 듣고, 동분서주하면서 제가 도와준 적이 있어요. 뇌종양 수술과 함께 두 눈은 실명까지 했지만, 외국인 이주여성이라는 이유로 도움의 손길조차 내밀지 못하고 있었지요.”

 

인종에 대한 차별이든, 인간에 대한 차별이든, 이 땅에서 차별의 부당함을 목도할 때마다 화가 난다는 용미중 대표. 당시 동사무소를 찾아다니고, 법무부 장관에게 탄원서까지 보내면서 결국 이 이주여성의 국적취득을 가능하게 했다. 이렇게 해서 가족의 기초생계비와 수술비도 지원받을 수 있었고, 뇌종양 수술 후에는 정신치료까지 받을 수 있는 길도 함께 열어 주었다.

 

“앞으로 제 꿈은 봉사와 나눔 활동이 보다 체계적으로 진행될 수 있는 네트워크의 ‘센터’를 만드는 일이예요. 수많은 봉사회들이 서로 긴밀한 관계 속에서 활동하게 된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내게 될 테니까요. 예를 들어 목욕봉사와 간호, 호스피스 등의 봉사 프로그램이 한 가정을 맡아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도록 말이지요.”

 

가령 도움이 필요한 요청이 있을 때 센터에 한 번만 신청하면, 모든 필요를 채워줄 수 있는 그런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구상이다. 또 머지않은 시간에 ‘하늘빛 요리학교’ 아이들과 함께 아트포라이프 레스토랑 체인점도 더 낼 계획이다. 용미중 대표는 봉사란, 감정적으로 느끼는 안타까운 마음보다는, 정확한 목적과 철학이 중요하다고 힘주어 말하고 있었다.

 

 

                                                                                                                                              ⓒ 오솔길

 

                                             아트포라이프에서 용미중 대표를 만나기 전에 오솔길도 한 컷.

                                              (경기도자원봉사센터 김정희 홍보팀장 촬영)

 

 

경기도자원봉사센터 발간 <함께하는 사랑의 길> 2008년 9·10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