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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미디어에 비친 과학기술과 종교의 관계는...

어휘소 2008. 12. 10. 12:50

길에서 만나는 과학 | 과학기술, 종교를 만나다

 

서울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문영빈 교수


‘과학 없는 종교는 온전히 볼 수 없으며, 종교 없는 과학은 온전히 걸을 수 없다’ 

 

과학기술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주로 연구해온 종교학자 문영빈 교수(서울여자대학교 기독교학과). 그는 과학기술과 종교, 이 둘과의 만남에 대해 리처드 번스타인의 말로 대신 설명하곤 한다. ‘(과학)기술 없는 실천적 지혜(혹은 지식)는 공허하며, 실천적 지혜 없는 기술은 맹목적이다.’

 

“과학기술과 종교는 인간이 삶의 환경의 우발성을 관리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편으로 출발되었다는 공통점을 지녔습니다. 고고학적으로 불의 도구, 사냥과 농경 도구들을 발명하기 시작한 것이 과학기술의 기원입니다. 이런 도구들은 각각 생존과 직결되는 환경인 불과 먹을거리들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것이었지요. 불을 만드는 도구가 없다면 불이 우발적으로 날 때까지 마냥 기다려야 했겠지요. 또한 종교의 기원도 인간이 자연재해, 질병, 죽음 등과 같은 극한상황을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초자연적 존재를 상정하고, 의지하게 되면서였습니다.”


그럼 현대사회, 뉴미디어에 비친 과학기술과 종교의 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문 교수는 최근 발표한 논문에서(‘과학기술과 종교: 미래지향적 패러다임’) 우선 첨단 과학기술에 숨어 있는 종교적 차원의 에피소드들을 소개한다. 그는 세계적인 천문학자이자 작가인 칼 세이건의 소설을 영화화 한 <컨택트>에 주목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영화 <컨택트>는 광활한 우주에서의 ‘인간존재의 의미’, 또 다른 영화 <AI>는 인공인간의 종교성을 SF적 상상력을 동원해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영화가 그려가는 ‘외계인의 존재에 대한 신앙’을 종교적 신앙으로, 외계인과의 소통 경험 또한 일종의 종교적인 차원의 경험이 아닐까?’라는, 종교학자로서의 흥미 있는 해석을 선보인다.

 

“칼 세이건은 무신론자를 자처하는 천문학자이자 천체 물리학자이지요. 하지만 <컨택트>라는 소설에서는 외계인과의 소통 경험을 깊은 종교적 감성으로 표출하고 있는 것이 참 신선했습니다. 외계인(Extraterrestrial Intelligence)은 문자대로라면 ‘초지구적 지성’을 뜻합니다. 하지만 작품 속 ‘SETI 프로그램’은 이런 외계 존재에 대한 ‘신앙’에 기초하여, 그들과 소통하고자 합니다. 바로 이 과학프로그램은 종교 영역에서 ‘초자연적 지성’인 신의 존재를 믿으며, 이 존재와 소통하려는 종교적 활동과도 어느 정도 맥을 같이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종교학자가 바라보는, 과학기술과 종교가 함께 만들어갈 미래의 ‘멋진 신세계’는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문 교수는 과학기술과 종교는 각각 서로 다른 소통방법의 판단기준들 때문에 나름대로의 맹점을 어느 정도 노출할 수밖에 없다고 전제한다. 이를테면 ‘초월성’이 부재한 과학기술, 거꾸로 ‘실증과 통제’라는 과학기술적 코드가 배제된 종교의 영역이 그것이다. 여기서 그가 주문하는 것은 두 영역의 ‘창조적 긴장관계’ 형성이다. 과학과 종교가 조화를 이루려면 이 두 시스템이 서로의 맹점들을 보완하면서, 동시에 견제하는 ‘창조적인 긴장관계’ 속에 놓여야 한다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종교, 이 둘 사이에는 우리가 반드시 경계해야 할 분명한 공통점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오만의 위험성과 모호성’입니다. 과학기술과 종교는 모두 인간의 초월성에 뿌리를 두고 있지요. 그런데 인간의 초월성은 동시에 오만의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 한 예가 서구 중세시대 종교의 모습입니다. 이때의 종교는 그 초월성을 무기로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지요. 또 현대 과학기술 문명사회에서는 과학기술이 막강한 권력을 지닙니다. 자연환경을 초월적으로 통제한다는, 암묵적인 초월성을 무기로 행사하게 되면서부터이지요.

 

 

 문 교수는 이러한 권력과 오만에는 항상 위험성이 따르게 마련이라고 재차 경고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그가 제기하고 있는 ‘인공인간권’이 이채롭다. 나노, 생명공학, 인지과학이 주도할  미래세계. 이때가 되면 자연권, 생명권, 인권 문제처럼, 인조인간에게도 인간과 똑같은 권리가 부여돼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마치 인간처럼 고통을 느끼게 될 신인류, 그런 로봇이 창조될 단계가 된다면 ‘인공인간권’은 곧바로 심각한 이슈가 될 것이라고 그는 예측한다. 고통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의식의 단계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로봇에게도 그에 상응하는 권리가 주어져야 마땅하다는 견해이다. 나아가 더 큰 문제는 이미 여러 공상과학영화가 보여주듯 로봇의 지능이 고도화되면, 로봇의 권력화를 우려해야 할지 모른다는 점이다.


“종교학자로서 이제까지 저는 과학기술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 주로 연구해 왔는데요. 앞으로는 이 두 시스템들의 관계를 더욱 깊고, 포괄적으로 조명해 보고자 합니다. 이들을 매개하는 다양한 시스템들 즉 미디어, 영화, 예술, 문학, 정치, 경제, 교육, 법 등이 포괄적인 연구대상입니다. 그리고 그 연구결과를 집대성해 보자는 게 종교학자로서 남겨진 제 과제입니다. 그러자면 앞으로  20여 년은 족히 더 연구에 매진해야 하지 않을까요.”

 

문영빈 교수는 올해를 안식년으로 정해 지난 7월 중순부터 미국 버클리에 머물고 있다(따라서 이 인터뷰는 이메일을 통해 진행됐다). 그가 교환교수로서 현재 연구를 수행 중인 곳은 ‘과학과 종교 연구소’. 과학과 종교에 관련한 연구 부문에서는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고 있는 곳이다. 이번 학기 동안에는 또한 UC 버클리, 스탠퍼드대학과 연계하여 뉴미디어, 인지과학, 종교의 관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그는 알려왔다. 또 이 프로젝트가 끝나는 다음 학기에는, 보스턴으로 이동하여 하버드대학, MIT와 연계한 같은 연구를 계속할 예정이다.


<과학기술혁신뉴스> 2007년 8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