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왔습니다

아름다운 만남, 광주 살레시오여중 박금우 선생님

어휘소 2009. 1. 15. 17:36

 

                                                   

 

박금우 교사를 만나면서 2년 전, 국내 과학계를 긴장케 했다는 발표 하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KICE)이 발표한 ‘OECD 학업성취도 국제 비교연구(PISA 2006)’다. 읽기와 수학 등의 교과목은 1~2위를 한 반면, 과학은 5~9위를 기록했다. 이후 과학계는 그 원인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토론회를 열었다. 이날 현장의 과학교사들은, 과학에 대한 학생들의 관심과 흥미가 멀어진 데서 그 원인을 찾았다.

 

광주 살레시오여자중학교(교장 류경희) 박금우 교사는 이미 13년 전부터 이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교수・학습방법을 개선, 과학교육의 새로운 틀을 만들어 왔다.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과학수업을 위해 교과 전 과정을 실험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2004년 1월에는 중동의 팔레스타인과 동티모르 학생들의 과학 실험수업을 돕기 위해 해외 봉사까지 다녀왔다. 박 교사는 이처럼 국내외를 넘나들며, 과학교육의 내실화를 이끈 공로로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 선정 ‘올해의 과학교사상’을 수상했다.

 

 

                                                

 

 

지난 12월 15일. 광주 살레시오여중 과학실의 수업광경은 한마디로 흥미진진한 퍼포먼스를 보는 듯했다. 실험의 주제는 ‘과일전지 만들기’. 실험을 통해 전류가 흐르는 과학 원리를 배우는 시간이다. 2학년 1반 학생들의 모둠에는 오렌지, 바나나, 레몬, 감자, 사과, 발광 다이오드 등이 나란히 준비돼 있었다. 수업 중간, 박 교사가 과학실 전등의 스위치를 껐다. 그러자 ‘과일전지’를 통과한 전류가 발광 다이오드에 불을 켠 모둠에서는 일제히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러나 아직 빛을 보지 못한 모둠에서는, ‘한줄기 빛’에 대한 간절함이 학생들의 얼굴로 번져갔다.


“수업이 재미없다니, 저에겐 충격이었어요!”


“1995년 봄이었어요.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는 아이가 있었죠. 왜 집중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수업이 재미없다는 거예요. 제겐 조금 충격이었어요. 저는 그때까지 제가 수업을 아주 잘하는 줄 알았거든요(웃음). 어떻게 하면 재미있겠느냐고 물었더니, 실험수업을 하면 좋겠다고 대답을 해요. 그 다음 날부터 모든 수업을 실험수업으로 하게 되었지요.

 

박 교사의 실험수업은 그렇게 봄날의 충격(?)이 계기가 되었다. 그런데 한 학기에 2~4차례 하던 실험을 갑자기 모든 과정으로 확대하려니 시간이 부족했다. 또 실험 결과 오차가 너무 커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도 있었다. 매년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험방법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도 계속해야 했다. 박 교사는 우선, 방과 후에 과학반 아이들과 함께 교과서의 실험을 그대로 해 보기로 했다. 그러면서 실험 방법을 조금씩 개선하고, 시행착오를 수정해 나갔다. 실험수업을 시작한 지 10년쯤 지나자 실험 때문에 진도가 늦어지거나, 이론만 배울 때보다 과학 성적이 낮아지는 등의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다.


박 교사가 경북 안동의 학교에서 이곳 광주로 옮겨온 건 3년 전. 2005년, 이 학교 청년교사 연수 때 강사로 맺은 인연이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게 됐다. 박 교사는 이때 영국, 터키, 싱가포르 등지의 학교에서 참관했던 창의적인 과학수업의 내용과, 동티모르에서의 실험수업 봉사에 대해 주로 소개했다. 그렇게 살레시오여중에 부임하고 첫 해, 실험수업 과정에 대한 여학생들의 적응은 쉽지 않아 보였다. 더러는 실험기기가 겁이 난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그 이듬해 박 교사는 1학년 학생을 대상으로 ‘또래실험도우미 연수’ 프로그램(토요휴무일에 월 1회씩 38시간 수료)을 새로 만들었다. 이 연수를 신청한 30명은(각 학급별 10명씩) 실험수업 때마다 박 교사를 도와 각 모둠의 실험 리더 역할을 맡고 있다. 그렇게 3년이 지난 지금은 여학생들도 고장 난 기기를 보면 분해해서 손수 고칠 만큼, 실험기구들과 잘 어울려 지낸다.


시골 오지와 해외로 이어지는 과학캠프 봉사


“제가 실험수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해 오는 데 영향을 주신 선생님들이 여러 분 계세요. 현재는 베이징한국국제학교에 파견 나가 계신 이은경 선생님도 그 중 한 분이시죠. 이 선생님은 밤 10시에 댁으로 전화를 드려도 ‘네, 과학실입니다.’ 그렇게 전화를 받으십니다. 창의력 넘치는 수업을 위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샘솟으시는, 열정적인 분이세요.

 

박 교사 또한 실험수업 정리와 준비, 과학대회 지도, 또래실험도우미 연수 준비를 하다보면 퇴근시간이 밤 9시가 훌쩍 넘곤 한다. 또한 수업 환경이 열악한 농어촌 학교에서 과학캠프를 운영해 달라는 요청이 오면, 먼 길을 마다않고 달려간다. 2004년에는 팔레스타인과 동티모르에도 직접 다녀왔다.


“2004년 1월, 팔레스타인 봉사현장에서 만난 신부님께서 제게 동티모르 지역을 추천하셨어요. 전쟁의 참상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에게 재미있는 과학 실험으로 미래에 대한 꿈과 희망을 심어주고 싶었지요. 봉사 마지막 날, 그곳에 계신 한 수녀님의 말씀이 4년 동안 저를 그곳으로 향하게 만들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슈미츠 여학교에서 봉사활동 중(박금우 선생님 사진)

 

                      동티모르에서 실험수업 해외봉사를 하면서(박금우 선생님 사진) 

 

그 한마디는 바로 “한 번 다녀가신 분은 다시는 이곳에 안 오시던데요.”였다. 하지만 혹시라도 다시 오게 된다면 “소독용 솜과 알코올을 가져다 달라.”는 부탁도 함께였다. 이후로 봉사는 4년째 계속되었다. 그것도 왕복항공료와 실험기자재 구입 등 자비 부담으로 다녀온 봉사다. 하지만 2008년 1월엔 건강상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권고에 따라 그곳에 가지 못했다며 박 교사는 안타까워했다. 건강이 회복되면, 동티모르에서의 실험수업은 한동안 계속 진행할 계획이란다.

 

“실험수업 도중 자신이 도출해낸 결과를 지켜보며 행복해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보면, 저도 행복해집니다. 그것이 제가 실험수업을 해야 하는 이유이자, 과학교사로서의 보람이기도 해요.

 

이번 겨울 방학에도 박 교사는 학교에 나와 과학 동아리 ‘청개구리 과학반’ 아이들과 함께 보낼 참이다. 앞으로도 여학생 친화적인 실험방법을 지속적으로 개발하고, 요리과학실을 따로 만드는 꿈도 꾸고 있다. 학생들과 요리를 통한 과학실험에도 빠져보고, 과학놀이터도 만들어 생활 속에서 과학의 원리를 찾는 탐험을 계속해 나갈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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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를 다녀와서…

 

취재가 있던 날,

복도에서, 혹은 교정에서 만나는 아이들마다

"우리딸, 우리딸" 하시며

아이들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주시던 박금우 선생님.

 

내내 건강하시기를....

 

2009년 1월 15일,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