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앤 K. 롤링, 그녀에 대한 마법 같은 이야기들…
갓난 어린 딸의 우윳값을 벌기 위해 써 내려갔던 한 고아 마법사 소년의 이야기가 가난한 무명작가를 구원해 냈다.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문화상품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작가 조앤 K. 롤링. 그녀가 쓴 <해리포터 시리즈>는 이미 전 세계 120여 개국에서 1억 4천여 만 권이 팔려나간 것으로 전해진다.
최근 영국 버킹검 궁은 그녀에게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영제국훈장까지 수여했다. 롤링은 이제 영국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 어린이는 물론 어른들에게까지도 출판에 있어서만큼은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중심인물로 떠올랐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영화 포스터
<해리포터>를 집필하기 전, 에든버러 사회보장국으로부터 주당 70파운드의 생활 보조금으로 겨우 연명하던 그녀. 하지만 이제는 작가로서는 유사 이래 처음으로 약 1조원에 달하는 재력가가 될 것이라고 영국의 한 일간지는 보도했다. 쥐들이 울어대며 냉기가 흐르는 어두침침한 아파트. 그 곳에서 돈을 아끼기 위해 난로 위에 올려놓은 주전자의 미지근한 물로 고픈 배를 달래며 원고지를 채워갔던 책. 그 제목이 바로 총 7편 시리즈의 제1편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이 책을 쓰면서 그녀가 늘 외우던 마법의 주문 때문이었을까. 고통과 외로움, 가난 때문에 늘 남루하기만 했던 그녀의 아파트는 이젠 넓은 정원이 있는 화려한 저택으로 바뀌어 있다. 낡은 옷을 입은 창백한 얼굴의 모녀에겐 새 옷가지가 입혀졌다. 소설과 같은 마법이 아니고서야 일어날 수 없을 법한 꿈같은 일이 현재 조앤 K. 롤링 그녀에게 일어나고 있다.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영화 사진
수없이 많은 무명작가의 초라한 출발이 그러하듯이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역시 세상에서 그 빛을 보기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남모를 고독과 굶주림에 지쳐가며 써 내려간 그녀의 첫 판타지 소설은 처음에 그 어느 곳에서도 출판하자는 소리가 없었다. 거절당한 출판사만도 무려 12곳. 출판을 맡아줄 에이전시를 찾을 당시, 8만 단어에 이르는 방대한 원고를 복사할 돈이 없어서 어렵게 구한 옛날 타자기로 손수 두 부씩 타이핑을 해야 했다는 일화는 이미 너무나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그리고 드디어 크리스토퍼 리틀이라는 에이전트에게서 독점계약을 원한다는 답장이 오고, 에이전트의 노력으로 블룸스베리 출판사와 계약을 맺은 때가 1996년이다.
하지만 현재 <해리포터 시리즈> 전 4권을 출간한 블룸스베리에서도 처음엔 출판을 거절당했었다. 결국 출판사측의 재심 과정에서 우연찮게 통과되어 드디어 초판이 나올 수 있었다. 초판 발간 부수는 고작 500부. 전 세계 어린이들을 열광케 하고 있는 1억 부의 첫 출발은 이처럼 보잘 것이 없었다. 이 500부 중 한 권이 출간한 지 채 3년도 안 된 2000년 11월, 영국의 경매시장에 나왔다. 그 가격은 우리 돈으로 약 1천만 원을 호가했다.
1966년 영국 웨일스의 한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롤링은 두 살 아래의 여동생에게 모험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롤링은 어린 시절부터 소녀 몽상가로 소문이 자자했다. 동네 친구들과 어울리며 상상하는 놀이를 즐겨 했고, 자기가 만든 이야기를 손수 글로 적어서 여러 편의 동화를 쓰기도 했다. 어린 롤링은 이른바 책벌레였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헤르미온느’는 바로 그 자신을 모델로 한 것이다. 또 책 속의 주인공 ‘포터’라는 이름은 그녀가 어릴 적 윈터본에서 함께 뛰어 놀던 동네 친구의 이름이다.
'해리포터와 혼혈왕자' 영화 사진
엑세터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한 롤링은 한 회사에 비서직으로 사회의 첫 발을 내딛는다. 하지만 회의 시간에는 노트 한 구석에 소설 캐릭터를 만들었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는 소설의 스토리를 만드느라 여념이 없었다. 결국 비서직을 그만두고 영어교사 자리를 얻어 포르투갈로 떠나게 된다. 롤링은 그곳에서 한 일간지 기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결혼하게 된다. 그러나 행복한 결혼생활은 3년을 채 넘기지 못하고 그녀는 결국 영국으로 돌아와야 했다.
이즈음 이러한 아픔과 시련을 밑천으로 그녀의 본격적인 글쓰기가 시작됐다. 허름한 집을 벗어나 근처의 ‘니콜슨’이라는 카페의 한 쪽 구석에서 그녀는 진한 에스프레소 커피 한 잔과 따뜻한 물로 끼니를 때우며 글을 썼다. 호그와트 마법학교를 세우고, 그녀 역시 고아 소년 해리와 똑같이 마법의 빗자루를 타고 놀면서 하루라도 빨리 그 팍팍한 일상에서 벗어나길 소망했다.
그러한 그녀의 소망이 이뤄지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해리포터>의 환상적인 마법의 세계에 빠져드는 꼬마 독자들이 늘어나면서 이 열풍은 대서양을 넘어 미국으로, 아시아로, 그리고 전 세계로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특히 중국에서는 <해리포터>가 마오쩌뚱(毛澤東)의 어록을 담은 책자보다 더 많이 판매되는 유례 없는 진기록을 기록했다고도 전해진다.
글쓰기를 업으로 삼고 있는 전업 작가에게는 어쩌면 최고라 할 수 있는 헌사가 그녀에게 주어졌다. ‘문학 사상 셰익스피어 이후 최고의 상품가치’를 지녔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출판에 이은 영화와, 게임, 캐릭터 산업 등 그녀가 창조해 낸 <해리포터>의 주인공들로 인해 그녀는 이제 곧 억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롤링이 산고를 겪으며 낳은 귀여운 소년 ‘해리’의 복장은 패션 산업에까지 불을 지피고 있다. ‘해리포터 목도리와 스웨터’ 등은 영국 어린이들이면 누구나 입는 평범한 교복이 되고 있다.
그러한 롤링이기에 상복도 이어졌다. <뉴욕 타임스> 선정 베스트셀러 1위, 북 리스트 편집자가 뽑은 최고의 도서, 1997년 영국이 선정한 우수도서상과 ‘스마티즈상’ 수상, 미국도서협회 선정 우수 도서상 수상 등이 줄을 이었다. (* 2009년 2월 3일에는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종 도뇌르'를 수상했다고 외신은 일제히 전했다.)
가난한 무명작가에서 세계의 출판 문화산업을 움직이는 ‘힘 있는 마법사’가 되기까지 그녀의 치열했던 삶은 보다 창조적인 작가정신과 도전, 그리고 희망을 놓지 않았기에 가능했다. 그녀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해리포터>를 쓰는 동안 내가 줄곧 스스로에게 주문했던 기도문처럼 독자들에게도 그 마음이 온전하게 전해지길 원한다.” 라고.
그녀의 바람은 바로 우리 모두가 꼬마 ‘해리’가 되어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소망, 그것을 하나씩 하나씩 들추어내는 것이다. 슬픔도 때로는 힘이 되는 것처럼…….
현대증권 사보 <You First> 2002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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