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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구려 술 '계명주' 제조 기능보유자 무형문화재 최옥근 씨

어휘소 2009. 7. 29. 11:47

 

달콤하고 매혹적인 술,

'계명주' 제조 기능보유자 최옥근 여사 

                                     

 

                                                                                                              ⓒ 오솔길

 

말을 타며 수렵을 즐겼던, 활달한 기상을 지닌 고구려의 술이지만 이름만은 시적이고, 또 매혹적이다. ‘여름날 황혼 무렵에 빚어 새벽닭이 울 즈음이면 마시게 된다는 술, 계명주’다. 신라에는 경주의 교동법주가 있고, 백제에는 한산 소곡주가 있다면, 고구려의 술은 계명주다. 고구려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진 지 1300여 년. 그런데 다행이랄까. 고구려인들의 기상과 혼이 담겼다는 계명주의 그 명맥은 현재 경기도 이천 땅에서 이어지고 있다. 평안남도 강동군, 결성 장 씨 집안의 11대 종부가 된 최옥근 씨 부부의 노고 덕분이다(남편 장기항 선생은 3년 전 작고했다).

 

최옥근 씨는 스물세 살에 종부로 시집와 요즘도 시어머니로부터 배운 전통방식 그대로 계명주를 빚는다. 올해 나이 예순일곱. 계명주와 인연을 맺은 지도 어느덧 44년째다. 최 씨는 1987년 3월, 경기도가 지정한 전통주 기능보유자로 제1호 무형문화재다. 또 96년 4월에는 농림부로부터 전통식품 명인으로도 추대되었다.



“1965년에 시집온 그 이듬해부터 시어머니께 술 빚는 법을 배웠어요. 계명주 담그는 일이 손이 많이 가고, 무척 까다롭지요. 일반 곡주는 대개 쌀을 쪄서 고두밥으로 만들지만, 계명주는 옥수수로 죽을 쑤어서 만들어요. 갓 시집온 그 때의 뜨거운 여름날, 큰 가마솥단지를 걸고 불을 때는 일은 대단한 인내가 필요한 일이었지요. 웬만한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는 만들 수 없는 게 바로 계명주예요.

 

최 씨의 시어머니 박채형 씨는 1.4 후퇴 때 피난 내려오면서 집안의 제사문화를 적은 <기일록(忌日錄)>만은 꼭 챙기셨다 한다. 후에 며느리에게 이 책을 전하면서 “명절이나 집안의 제사에는 반드시 제주로 계명주를 올려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다.

계명주는 옥수수와 수수, 엿기름 등 7가지의 곡물로 만든다. 초창기에는 율무를 넣기도 했는데 요즘은 잘 쓰지 않는다고 최 씨는 전한다. 제조는 맷돌로 간 옥수수로 죽을 끓이는 것부터 시작된다. 이것을 삼베자루로 걸러 식힌 뒤, 여기에 미리 조청에 담가두었던 누룩과 솔잎을 첨가해 항아리에 담는다. 이때 완성된 술의 성패 여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온도다. 온도가 낮으면 발효가 잘 안 되고, 또 높으면 술이 쉬게 된다. 섭씨 25~28도가 가장 좋은 술맛을 내는 조건이라고 한다. 옛 문헌에는 전날 밤에 담가 다음날 새벽에 마시는 술이라고 되어 있지만, 요즘은 보통 5~8일 정도 숙성시킨다. 잘 숙성된 계명주는 체로 거르고 나면, 맑은 노란색을 띤다. 맛은 부드럽고, 달콤하다. 재료로 엿기름과 조청을 쓰기 때문이다. 또 솔잎이 들어가서 솔향기도 배어난다.



“재래방식으로 만드는 전통주는 알코올 함량을 고르게 하는 게 쉽지 않아요. 예전에 상품으로 선보일 때는 7도, 11도, 13도, 16도 4종의 술을 만들었어요. 한창 술이 알려지고부터는 전국 3000여 개의 체인점을 가진 주점에서 납품을 의뢰해온 적도 있어요. 그런데 재래식으로는 균질한 품질을 대량으로 확보하기가 쉽지 않아 거절했죠. 미국과 일본의 수출상담 건도 그렇고요. 계명주가 많은 사람들에게 입소문이 나면서 이제는 고구려의 술 하면 계명주를 떠올리시는 분들이 많아져 보람을 느낍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고인이 된 남편 장기항 씨의 숨은 공이 무엇보다 컸다. 태권도계의 원로였던 고인은 계명주가 고구려의 술임을 옛 문헌을 통해 고증해 냈다. 그 옛날 집안에서는 이 술을 ‘엿탁주’라고 불렀는데, 여러 문헌을 대조한 결과 계명주와 엿탁주가 같은 술임을 밝혀낸 것이다.

 

 

                                                                                                          ⓒ 오솔길

 

 

“3년 전 돌아가시고 유품을 정리하다 보니 계명주에 관한 기록을 적은 원고지와 자료가 수십 박스나 나왔어요. 생전에 계명주에 대한 고증과 확인을 위해 한 달씩 이북5도청엘 오가시면서 관련된 인사들을 만나고, 확인을 받으시고는 했어요. 또 필요한 학술적 고증을 위해서는 누런 서류봉투 옆에 끼고 이 대학, 저 대학의 식품관련 학자들을 찾아다니곤 하셨지요.”

 

최 씨는 계명주의 학술적 고증에 큰 힘이 되어준 민속주 학자 고 이성우 교수에게 감사함을 잊지 않았다. 800년 전 중국의 음식서적인 <거가필용>과 조선시대 허준의 <동의보감>에 소개된 계명주와 엿탁주의 제조방법이 동일하다는 것을 밝혀내고 확인해 준 이도 고 이성우 교수였다. 또 고구려가 멸망하기 전인 1600년 전, <제민요술>에 기록된 ‘하계명주’와도 같다는 것을 고증해 냈다.



계명주의 제조법은 현재 최 씨의 장남 장성진 씨(43세)가 전수받아 대를 잇는 중이다. 평생을 바쳐 제조비법을 지켜온 부모에게 효도하는 마음으로 전수자가 되기로 결정한 장남이 고맙고, 대견하다는 최옥근 씨. 하지만 그 길이 고되고, 지난하다는 것을 익히 알기에 미안한 마음도 없지 않다고 한다.

 

최 씨는 지난 6월, 남양주에서 이천으로 이사했다. 최근 수 년 동안 남편의 오랜 투병으로 술 빚는 일과 사업마저도 어려움을 겪어온 터였다. 그로 인해 사업장도 지난 2년 동안 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술은 좋다고 하는데, 세월이 안 좋으니까……” 하는 최 씨의 말에서 진한 아쉬움이 전해져 왔다.

 

“이곳에 계신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몇몇 분이 도움을 주셔서 오게 됐지요. 이제 이곳 이천에서 새로 시작해야지요. 지난주에도 이천 시민들에게 계명주를 알리는 시음회가 있었어요. 앞으로 도자기축제에도 참여하고, 쌀 축제에도 나가고 하면서 계명주를 더 널리 알리려고 해요.

 

요즘 최옥근 씨에게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사라질 지도 모르는 무형문화재에 대해 사회에서 좀 더 관심을 기울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넉넉지 않았던 집안의 종부로서, 집안 대대로 내려온 전통주 담그는 일을 44년째 해온 최옥근 씨. 남은 생도 고구려의 술 계명주를 담그며, 그 전통문화의 맥을 잇는 일에 매진할 것이라고 했다.

 

 

                                                                                                    ⓒ 오솔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