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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꿈꾸는 산악인, 허영호

어휘소 2009. 10. 26. 15:48

 

                                                                                                                        드림앤어드벤처 사진

 

 

하늘을 꿈꾸는 산악인, 허영호

 

탐험가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명예이자 훈장이랄까.

그의 이름 앞엔 ‘최초’라는 수식어가 자주 따라다닌다.

2008년 4월 1000킬로미터 첫 국토종단비행 성공.

이어 9월에는 500킬로미터 독도비행 성공.

이후 그는 울릉도에 착륙한 최초의 비행기 조종사가 되었다.

이제까지 총 비행시간 약 200여 시간.

물론 경량비행기 조종을 통한 기록이다.

그는 이제껏 그만의 방식으로 하늘 길 탐험에 나서,

초경량기 비행 역사의 새로운 기록을 하나씩 만들어 가는 중이다.

 

세계에서 최초로 3극점과 7대륙 최고봉에 오른 세계적인 산악인이자,

탐험가 허영호 씨(드림앤어드벤처 대표).

그의 이야기다.

 

남극점과 북극점, 그리고 8848미터 높이의 에베레스트.

바로 그가 걸어서 다녀온 세계의 세 꼭짓점이다.

여기에 더, 그는 히말라야 8000미터급 14좌 중 여섯 봉우리도 오른 경험이 있다.

자신의 두 발로 걸어 경험해보지 않은 이로서는,

과연 그 극한 환경의 엄혹함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에게 땅 위를 걷는 탐험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모양이다.

1995년 목표했던 7대륙 최고봉과 3극점 도보원정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그는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된다.

1998년, 초경량 항공기 조종면허증을 따면서 파일럿이 된 것이다.

 

 

소년 허영호, 파일럿을 꿈꾸다

지난 5월 1일부터 5일까지, 그는 초경량 항공기 동호인들과 함께

경기도 안산 시화호 일대 상공을 누볐다.

2009국제레저항공전의 홍보대사를 맡은 인연 때문이다.

이 행사에는 항공에 대한 꿈을 키워가고 있는 어린이, 청소년들도 많이 참가했다.

그는 이들에게 초경량비행기 운항 시범은 물론,

함께 비행기에 올라 사진을 찍는 등

그들의 하늘로 향한 꿈의 여정에 선뜻 동행해 주었다.

 

‘소년 허영호’의 어렸을 적 꿈은 파일럿이었다.

그런데 그것에 다가서는 데는 그가 가진 조건들이 녹록치 않음을 알아챈

‘청년 허영호’는 그 꿈을 잠시 유보했다.

대신에 그는 높은 산과 암벽을 오르며, 그 꿈을 달랬다.

그리고 그 후 그는 세계적인 산악인이 되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늘 산에 가지 마라, 물에 가지 마라 얘기해요.

그러니 아이들의 모험심도 자꾸 쪼그라들 수밖에요.”

 

그는 우리도 이제 동적인 문화에 좀 더 익숙해졌으면 좋겠다고 했다.

15년 전, 모험심 강한 독일의 한 소년이

경비행기를 몰고 러시아 붉은광장에 내렸던 것처럼,

청소년들에게 험의 꿈을 심어주잔다.

머리로 생각한 것들을 몸으로 실행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것.

탐험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되는 것이라면서 그는 아쉽다고 했다.

 

 

                                                                                              드림앤어드벤처 사진

 

 

 

 

최초의 1000킬로미터 국토종단 비행

 

2년 전, 새해 첫 날.

그는 경량비행기를 타고 새로운 모험에 나섰다.

여주에서 출발하여 제주 상공을 돌아오는 국토종단비행이었다.

그는 매년 십 수차례 이상 비행훈련을 하며,

궂은 날씨와 바람에 적응하는 훈련을 해온 터였다.

 

“등산과 달리 비행은 바람을 이용해서 바람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재미있죠.”

 

비행거리 1000킬로미터. 경기도 여주군 금사면 이포비행장을 이륙한

그의 ‘스트릭 섀도’는 공주, 전주를 지나 남하하면서,

남해 상공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스트릭 섀도’(전체중량 225kg, 80마력, 날개길이 9m의 2인승 기체)는

시속 130-150킬로미터로 순조롭게 비행해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기상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강풍에다 비도 함께 뿌렸다.

급기야 기류에 출렁이던 기체의 방향타가 고장이 나면서,

그는 기체와 함께 바다에 내려앉아야 했다.

다행히 인근에 지나가는 배가 있어 30분 만에 그와 기체는 구조될 수 있었다.

 

1년 후. 그는 다시 도전했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산과 들길에 벚꽃이 만개한 4월의 봄날이었다.

여주 이포 비행장을 떠난 그의 기체는 정확히 7시간 여 만에

제주 상공을 돌아 다시 여주로 돌아왔다. 이번엔 성공이었다.

내친 김에 9월에는 독도 왕복 500킬로미터 비행도 다녀왔다.

독도 상공을 선회한 그의 기체는,

울릉도에 안착한 최초의 고정익 기체가 되었다.

 

참 소중한, 자연과 함께하는 일

산을 오르고, 또 비행하는 일은 언제나 생명을 담보할 수밖에 없는 일.

늘 치밀하게 준비되고, 착오 없는 계산만이 실패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1000킬로미터 국토종단비행 당시 그는 혹시라도 바다에 빠질 경우에 대비해

사나흘은 물 위에서 생존할 수 있는 준비를 했다 한다.

 

“87년 에베레스트에 올랐을 때가 제일 좋았죠.

겨울 등반이라 추위와 눈보라로 인해 가장 힘들었어요.

또 크레바스에 빠지는 등 죽을 고비마저 넘겼지만, 기억에 가장 오래 남아요.”

 

95년에는 러시아를 출발한지 4개월 만에 1800킬로미터를 걸어 북극점에 닿았다.

영하 40-50도의 혹한 속에서 인내하며, 그는 그렇게 극한의 체험을 하고 왔다.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수개월씩 집을 비워야 하는 해외원정.

과연 집에서는 그에게 무어라고 할까. 그는 해외원정이나 산행계획이 세워지면,

집에는 일단 비밀에 붙인다고 한다.

떠나기 전, 가족들의 노심초사를 조금이나마 줄여볼 요량에서다.

그리고 떠나기 일주일 전쯤 불쑥, “나, 산에 다녀올게.” 라고 넌지시 말한다.

 

“집 떠나면 그저 즐거운데 어떡해요.

길을 떠나 자연과 마주하고 보면 참 재밌어요.

자연은 아름답고, 또 이거다 하는 룰이 없으니까…….”

 

그는 말을 이어간다.

“자연을 가까이 하면 자유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고,

살아갈 희망이 마구 용솟음치게 되죠(웃음).”

 

그런 그에게 산은 인생 같고, 또 등산은 어쩌면 업보 같기도 하단다.

국내산으로는 설악을 즐겨 찾는다고.

그가 그렇게 국내외 산을 다니며 찍어둔 사진이 어느새 2만 컷이 넘는다.

 

어른이 된 뒤 다시 꾸는 꿈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목표, 꿈이 하나 있다.

직접 자신의 애기(愛機)를 조종하여 평양의 하늘을 날아보는 것이다.

그 하늘 길을 연이어서, 세계일주 비행으로 그의 모험과

하늘로 향한 꿈을 멋지게 갈무리하는 것이다.

 

“제가 아니더라도 누군가는 꼭 해야 할 모험이고, 도전이에요.

우리나라 파일럿의 자존심이기도 하니까요.”

 

계획은 이미 오래 전 세운 것이고, 준비도 거의 완료된 상태다.

그러나 평양행과 세계일주 비행 모두 만만찮은 비용 때문에

아직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랜 경기침체로 인해 스폰서 구하기도 쉽지 않다.

세계일주 비행은 일본, 러시아 쿠릴 열도, 알래스카, 캐나다를 통과하여

그린란드를 경유, 유럽으로 이어지는 항로를 비행하면 어떨까?

요즘도 그런 상념들에 젖어 시간을 보내곤 하는 그다.

비행시간은 적어도 1년 6개월, 길게는 2년이 소요될 것으로 예정되는 대장정이다.

 

최근 들어 그는 전동비행기에도 관심이 많아졌다.

비행기에서 엔진을 내리고, 배터리를 얹어서 비행해 보는 계획도 가지고 있다.

 

“영국에서 이미 전동 경비행기로 실험비행을 성공적으로 마쳤다고 하지요.

그 비행기에 실린 배터리가 우리나라 제품입니다.

후에 저도 전동비행기에 국내서 만든 배터리를 장착하고,

최장 비행기록을 세워볼까 해요.”

 

그의 기록에 대한 도전은 끝이 없어 보인다.

늘 바쁜 와중에도 그가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일정은 바로 강연이다.

주제는 주로 ‘도전과 험’에 관한 이야기.

산에서, 혹은 바다에서, 하늘에서 겪었던 이야기들.

정상 바로 앞에서 악천후와 체력저하로 후퇴할 수밖에 없었던

에베레스트에서의 실패담도 좋은 강연 소재다.

 

내년, 그는 다시 한 번 히말라야 8000미터 고산등반에 나설 계획이라고 했다.

그가 산에 오르는 그 일은 앞으로 꾸준히 체력관리를 하여,

에베레스트 등정 40주년이 되는 2027년까지,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도 했다.

 

글| 오솔길

 

 <항공문화> 2009년 가을호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