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 고향(高香)막걸리 만드는 회사,
찬우물 최 진 순 회장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내가 좋아하는 말이다. 이제까지 나는 흔쾌히 나의 일에 미쳤었고, 또 발명하는 일에서도 그러했다. 올해 내 나이 일흔. 그러나 나의 일과 발명에는 정년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나이 마흔 줄에 직장에서 물러나, 할 일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는 사람들을 보면,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난 그들에게 일러주고 싶다. 젊디젊은 나이에 그대로 주저앉으면, 죽은 목숨이나 매한가지라고. 사람은 할 일이 없어지면 살아도, 살아 있는 게 아니라고. 칠순을 맞은 나에게 정년은, 내가 일손을 놓는, 바로 그 순간이라고 말이다.
우리 전통의 술 고향(高香)막걸리를 만드는 회사, 찬우물은 나에게 세 번째 도전이다. 2009년 6월 10일이면, 시작한 지 만 3년째다. 내 나이 예순일곱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내 인생에서 첫 번째 부여된 일이 가업을 돕는 섬유업이었다면, 두 번째는 삼우전자와 (주)청풍으로 이어지는 전자 부문이었다.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그 누구도, 사실은 나 자신도 예상치 못한 분야에 대한 도전이었다. 술 만드는 회사를 시작하고 보니, 이 일이야말로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보람도 있고 매력 있는 분야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야말로 새로운 발명의 세계에 또 다시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내가 이 일을 시작할 무렵, 주변의 친구들은 대부분 일손을 놓았다. 세상의 잣대대로라면, 이른바 정년퇴임할 나이를 모두 넘겼으니 왜 안 그럴까. 그렇지만 나는 내 나이에 집에서 손자 재롱이나 지켜보며, 고스톱 치며 시간만 축내는 건 왠지 부당하다고 느꼈다. 난 한창 일할 수 있는 나이지, 쉴 나이가 아니라고 생각했다.
나이가 들었어도 언제나 펄떡이는 심장으로 살아 있음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마도 내 오랜 지병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동안 나는 두 번의 심장수술을 받았다. 더욱이 오랫동안 앓아온 당뇨로 인해 시력까지 잃어가기 시작했다. 시신경이 완전히 막혀 눈이 잘 보이지 않았다. 주치의 진단으로는, 수술로도 회복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나는 결단코 눈을 떠야겠다고 다짐했다. 거기서 주저앉을 수는 없었다. 나는 자식들에게 내 몫의 스포츠카 한 대를 무조건 사 놓으라고 주문했다. 이유는 단 하나. 눈을 뜨기 위해서였다.
눈을 다시 뜨게 해준 ‘아이닥터’
‘내가 앞을 보지 못한다면, 어떻게 스포츠카를 몰 수 있겠어.’
나는 앞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절망 속에서도,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이겨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사람의 본성은 원래 자기의 의지대로 할 수 있다고 나는 믿고 있다. 예전에는 국제발명전 참가도 그렇고, 출장차 외국에 다녀올 일이 잦았다. 외국여행을 하다보면, 머리가 하얗게 센 할아버지들이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는 모습이 무척 보기에 좋았었다. 나는 그 모습을 떠올리며 아이들이 사준 스포츠카를 매일 어루만지며, 시력회복에 좋다는 일이면 무엇이든 닥치는 대로 했다. (주)청풍에서 판매됐던 ‘아이닥터’는 이런 사연을 통해 발명된 제품이다. 나는 점점 기능을 잃어가는 시신경을 풀어주기 위해 ‘아이닥터’라는 제품을 개발, 특허를 내게 된 것이다.
‘아이닥터’를 이용한 지 석 달여가 지났을 때, 시력이 조금씩 호전되기 시작했다. 눈이 조금씩 좋아지자 나는 마당에 모셔두었던 스포츠카를 몰고 거리로 나가보았다. 그렇게 6개월이 지나자 눈이 완벽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시력이 완전히 돌아온 것이다. 내게 살아야겠다는 뚜렷한 목표가 있고, 눈을 떠야겠다는 노력을 하니 마침내 목표대로 이루어졌다.
시력을 회복하자마자, 내가 내려온 곳이 강화도였다. 강화는 내가 태어난 고향으로, 중학교까지 여기서 다녔다. 이곳으로 오면서는 가장 먼저 공기 좋고, 물 좋은 곳으로 다니면서 산책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건강을 돌보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집에서 1시간 30분 정도 거리에 ‘찬우물’이라는 약수터가 있다. 물맛 좋기로 소문난 곳으로, 경기도 전역에서 물을 뜨러 오는 곳이기도 하다.
강화로 온 뒤,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곰곰이 생각을 정리해 나갔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나라에서 중소기업을 경영하는 일은 험난한 가시밭길을 걷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5년 피땀 흘린 연구 끝에 제품을 시장에 내놓은 지 한두 달이면, 중국에서 똑같은 제품이 싼 값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저비용의 노동시장과 싼 원자재 가격으로 인해 우리 중소기업은 중국과의 경쟁에서 설 땅을 잃고 말았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국제발명전 8연속 수상
현재 찬우물의 공장과 사무실이 들어선 건물은 내가 이곳으로 내려오기 수 년 전에 이미 사 놓은 것이다. 이곳의 지명은 냉정리. 우리 회사 이름처럼, 찬 우물이라는 뜻이다. 회사와 약수터와는 약 700미터 거리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찬우물 약수터에서 물을 긷기 위해 줄 서 있던 사람들을 떠올리며,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곳도 지하 깊숙이 파 보면 좋은 물이 나오지 않을까?’
처음엔 단순하게 그런 생각으로 땅을 파기 시작했다. 어차피 공장을 하려면 물이 필요하니, 무조건 파 보기로 한 것이다. 280미터쯤 파내려갔을까. 그 지점에서부터 물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찬 물이었다. 곧바로 수질 검사소에 검사를 의뢰했다. 검사 결과,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는 그 어떤 생수보다 수질과 맛이 월등하게 좋았다.
‘그럼, 나도 이 물로 생수장사나 한 번 해 볼까?’
그러나 그런 생각과 동시에, 왠지 자존심이 쉬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대한민국의 대표 발명가인데. 그것도 기네스북에까지 올라 있는 사람인데…….’
나는 스위스국제발명전, 뉘른베르크발명전 등 국제발명대회 8연속 수상으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 있다. 등재 후에도 나는 세 차례 더 수상하여, 국제발명전에서 11연속 수상한 기록도 함께 가지고 있다.
생수 사업에서 좀 더 범위를 넓혀가자, 술 생각이 났다. 술은 기분이 좋을 때도, 또 나쁠 때도, 슬플 때도, 기쁠 때도, 어른을 공경할 때도 빠지지 않는 게 바로 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는 나라가 망해도 술은 마실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자, 그때부터 나는 전국의 술 공장 순례에 나섰다. 술 공장을 돌아보면서, 술에 대한 기본이 부족하니 약주술은 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막걸리였다. 하지만 막상 전국의 막걸리 제조공장을 돌아보니 영세한 곳이 많았다. 막걸리가 우리의 전통주이자 대표주종이지만,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점이 눈에 띈 것이다. 나는 그 이유를 조사해 보았다. 먼저 막걸리의 단점이 떠올랐다. 막걸리는 일단 마시고 나면 머리가 아프고, 트림이 나는 게 흔한 현상이다. 또 마신 다음날이면 취기가 남아 있게 된다. 그리고 제조방법도 되짚어보았다. 전통 막걸리는 누룩으로 발효시켜 만드는 방법 한 가지였다. 나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고향막걸리, 풍부한 영양소에다 항암물질까지
이번에는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도 막걸리와 유사한 술은 있지만, 우리와는 달리 직접 균을 가지고 발효시키는 방식으로 만든다. 나는 그 균을 사가지고 왔다. 사온 균을 인큐베이터에서 증식시켜 막걸리를 만들어 보았다. 그렇게 만든 막걸리를 매일 산에 들고 가 마셔 보았다. 대개 당뇨 환자는 막걸리를 마시면 혈당 수치가 올라가게 된다. 그런데 내가 만든 막걸리는 마셔도 혈당 수치가 내려갔다. 심장병에다 혈압도 다소 높고, 당뇨까지 있는 내가 마셔보아도 독한 취기는커녕 몸에 힘이 솟는 것 같았다.
‘그래, 이제부터 이 막걸리를 상품화시켜 보자.’
찬우물의 고향막걸리는 이렇게 탄생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찬우물은 내 새로운 일터가 되었다. 오전 8시면 직원들과 똑같이 출근하고, 오후 7시가 되면 직원들은 퇴근해도 나는 회사에 남아 뒷정리를 하거나, 새로운 연구와 발명에 몰두하곤 하였다.
막걸리에는 인체에 필요한 단백질인 8종의 아미노산과 비타민 등이 상당량 들어 있다. 또 성인병의 원인물질인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어준다는 연구결과도 보고된 바 있다. 과음하면 간 손상이 우려되기도 하지만, 막걸리에는 다른 술에서 찾기 어려운 위와 같은 영양물질들 때문에 간에 대한 부담도 줄여준다. 또 세계적인 장수촌에서 주로 섭취해온 것으로 알려진 유기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특히 젖산·구연산·사과산 등은 체내 피로 물질을 제거하고 몸의 신진대사를 촉진해 변비에도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풍부한 활성효모 또한 인체에 필요한 소화효소 공급을 도와준다. 더욱이 막걸리는 저알코올이라 부담도 적으며, 다른 술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지방간 억제효능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적당량의 음주는 혈액순환에 좋고, 피로회복과 식용증진까지 돕는다. 또 막걸리는 발효과정에서 항암물질이 생겨 항암효과까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막걸리는 사람 몸에 이만큼 좋은 술이다. 고향막걸리는 마시고 난 뒤 트림을 하더라도 향이 나온다. 막걸리 마신 후 단점이라면 단점을 해소한 것이다. 또 직접 매일 마셔본 결과, 아무리 마셔도 한잠 자고 나면 깨끗하게 일어날 수 있다. 나는 내가 제조하여 판매한 술은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각오로 술을 만들고 있다. 또한 고향막걸리에 대한 연구와 실험은 현재 가천의과대학에서 계속 진행 중에 있기도 하다.
강화의 특산물로 만드는 ‘찬우물 명주’
고향막걸리가 처음 나왔을 때, 강화도에는 10가지 이상의 막걸리가 들어와 있었다. 우리 제품을 시장에 내놓았지만 처음에는 한 사람도 사지를 않았다. 한 병을 사면 하나를 더 얹어주는 1+1 행사를 하면서, 두 달여가 지나니 술이 조금씩 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6개월이 지나니 80%가 우리 고향막걸리만을 찾았다. 현재 강화도에서는 판매되는 술의 90%가 찬우물이다. 더욱이 강화도는 유서 깊은 문화유적과 전등사, 보문사, 마니산, 그리고 바다와 함께하는 지역으로 외지인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 곳이다.
비로소 외지로 시장을 넓혀도 되겠다는 자신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4월 초 설립한 인천지사에서는 문을 연 지 20여일 만에 하루에 1000병 주문으로도 턱없이 모자랐다. 곧 목표치를 하루 5000병으로 올려 잡고 있는 상태다. 고향막걸리는 또 현재 한 달에 5만병이 일본으로 수출된다. 올해 안에 월 10만병 수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고향으로 내려오면서 나는 한 가지 다짐을 했다. 강화에 들어온 만큼 강화 땅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막걸리 양산체제에 들어간 후 강화 인삼으로 특산 명주를 만들기로 했다. 이미 시중에 나와 있는 인삼주도 많았지만, 대개가 인삼과 대추를 단순 혼합하여 만든 것이다. 나는 인삼주 만드는 방법을 차별화했다. 인삼을 약탕관에 넣고 달여 농축액을 만든 후 술을 만드는 방식이다. 이렇게 만든 인삼주는 유효기간이 6개월, 길게는 1년이 지나도 상하지 않는다. 현재 이 술은 전국적으로 주문판매를 하고 있는데, 반응이 꽤 좋은 편이다. 강화약쑥도 마찬가지다. 약탕관에 고아서 농축액만을 집어넣어 술을 빚는다. 약쑥의 효능은 그대로이면서, 쑥에서 나는 약간의 쓴 맛은 달게 했다. 강화의 별미 순무도 술로 만들어서 현재 호응을 얻고 있다. 불교신자들을 위한 연막걸리도 만들어 현재 사찰에 납품 중이다. 내게는 이제, 어느 식재료도 주어지기만 하면, 좋은 술로 빚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찬우물 입구에는 강화 고향막걸리의 시음장도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는 강화 특산주 외에도 강화인삼, 쌀, 약쑥, 순무 등 강화의 특산물을 전시하고, 판매도 하고 있다.
강화 고향막걸리에 대한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서 벤치마킹하러 오는 발걸음도 잦다. 공장에서는 술 만드는 과정을 공개, 누구라도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숙성과정은 물론, 어떻게 병에 담기는지 그 제조과정을 일일이 보여준다.
인삼소금으로 만드는 된장고추장
프랑스나 독일 등 술의 명가에서는 숙성 및 저장창고가 모두 지하에 있다. 찬우물 역시 지하에 250평 규모의 숙성실을 따로 만들었다. 현재 시중에서 유통되고 있는 타사의 막걸리는 보통 숙성에서 판매까지 5일에서 일주일이 걸린다. 하지만 고향막걸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20일의 숙성과정을 온전하게 거쳐야 세상에 나온다. 모두 4차까지, 저온숙성 과정을 옹골차게 거치는 것이다. 지하 저장창고에서 보관되는 술은 자연 숙성되어 나오기 때문에 술맛이 더욱 깔끔하고 좋다.
나는 현재 술과 관련된 발명특허를 11가지 내 놓은 상태다. 여기에 요즘 한창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인삼소금’이다. 강화 인삼을 배가한, 새로운 소금을 만들고 있다. 인삼 농축액과 천일염을 1:1로 혼합한 뒤 시간이 경과하면 센 불에서 증발시키는 방식이다. 다시 시간이 지난 후, 약한 불로 볶으면 인삼소금이 탄생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등록한 특허는 약 300가지 정도다. 90년대 중반 건강을 잃고 발명하게 된 음이온 공기청정기, 눈의 시력을 회복하기 위한 아이닥터가 그렇듯이 인삼소금 역시 내가 필요에 의해 연구하고, 발명한 것들이다. 발명가는 자신의 특허를 제품화해서 끊임없이 업그레이드시켜 나가는 것이 과제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요즘 발상의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된장고추장을 만드는 것이다. 주재료가 쌀 대신 콩으로 만드는 고추장이다. 요즘 나는 강화에서 나는 콩이란 콩은 모두 사서 모으고 있다. 곧 간장도 선보이게 된다. 이들 제품에는 모두 새로 발명한 인삼소금을 쓰게 된다. 또 쌀 식초도 선보일 예정이며, 흑식초에 대한 연구도 새로 시작했다. 아직도 내 발명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이미 우리에게 친숙한 대상일지라도 새로운 접근과, 그 방법을 모색해보는 것. 또 옛날의 전통 방식을 따르되 신세대의 기호를 잊지 않는 것. 모두 새로운 발명인 것이다.
나의 하루 수면 시간은 예전과 변함없이 서너 시간 남짓, 길면 5시간이다. 조금 부족하다 싶은 잠은 낮에 점심시간 이후 30분 정도 잠깐 눈을 붙이곤 한다. 그런데 이 잠자는 시간이 내게는 더없이 귀한 시간이기도 하다. 내 발명의 영감은 때로 꿈속에서 힌트를 얻는다. 일종의 선몽(先夢)인 셈이다. 한창 새로운 아이디어와 생각에 집중할 때는 온종일 그 생각에 몰두해서일까. 꿈속에서조차 나는 발명가가 된다. 그런 꿈을 꾸고 난 아침에는 일어나자마자 반드시 메모를 해 둔다. 꿈속에서 내가 일을 어떻게 추진해나가야 하는지 그 방법은 물론, 결과까지 세세하게 그려 보일 때도 있다. 꿈에서 만난 그 금쪽같은 아이디어들을 좇아 생각을 가다듬은 뒤, 며칠 후엔 특허신청을 하곤 한다. 내 발명의 대부분이 이런 과정을 거쳐서 결실을 맺은 것들이니, 이 ‘비과학적인’ 발명 이야기들을 어떻게 규정해야 할까.
“영원한 발명가, 최진순으로 남고 싶다”
나의 꿈은 앞으로 막걸리 외에도 러시아의 보드카 같은, 대중에게 널리 사랑받는 술을 만드는 것이다. 또 요즘 새로 만드는 술 중에 쑥과 약초를 넣어 만드는 압생트도 있다. 대문호 헤밍웨이, 시인 랭보, 화가 고흐, 고갱 등 세기의 내로라하는 예술가들이 즐겨 마시던 술이 매혹적인 에메랄드빛의 압생트였다. 고흐의 예술적 영감의 8할이 이 압생트에서 기인했다는 이야기도 과장이 아닌 듯하다. 때문에 이 술은 ‘녹색 요정’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환각 성분이 있다 해서 한동안 금지되기도 하였다.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져 원래는 알코올 70%의 독주로 널리 알려졌지만, 앞으로 찬우물에서는 40%짜리 압생트로 선보일 계획이다. 또 앞으로 흑삼을 넣어 만든 블랙로열이라는 술도 준비하고 있다. 이로써 나의 최종적인 목표는 국내에서 양주 소비를 대체할 수 있는 명주를 많이 확보하는 것이다. 이것이 술 발명가로서 내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애국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제껏 임성직물, 삼우전자, (주)청풍, 찬우물로 이어지는 대표로 살아왔고, 또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두 차례 박사학위도 받았다. 그러나 나는 대표이사 회장보다는, 박사보다는, 발명가 최진순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한다. 찬우물 사무실의 입구 한쪽에는 ‘신지식 특허인, 최진순’이라는 조형물이 하나 서 있다. 2000년 특허청으로부터 받은 것으로, (주)청풍 사옥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온 것이다. 내가 가장 아끼는, 내 분신 같은 존재이다. 내 평생의 땀과 열정이 거기에 모두 담겨 있는 상징인 것이다.
사람들은 내게 섬유업에서, 공기청정기, 이제는 양조회사의 대표로서 성공한 인생이라고들 말한다. 그러나 내게는 아직 할 일이 더 남아 있다. 내 삶의 최종 종착지는, 나이든 사람,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함께 어울리며 살아갈 수 있는 일터, 그러한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다. 나이 들었다고, 손 놓고 할 일 없이, 이 세상 여행 끝나는 날만 기다리는 건 아니라는 생각이다. 노후에도 생명 다하는 그 순간까지, 일하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런 희망의 삶터를 만들고 싶다.
물론 내 남은 생의 여정에는 발명가로서의 삶도 여전히 들어 있을 것이다. 하나의 발명품이 빛을 보게 되고, 그것이 연결고리가 되어 또 다른 발명으로 업그레이드시켜 갈 수 있는 에너지, 그런 힘 있는 발명가로 살아갈 것이다. 지속적으로 업그레이드되지 않는 발명은 죽은 발명이다. 나의 살아 있는 발명은, 이제부터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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