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보 <카프로> 사진
좋은 붓은 네 가지 덕목을 고루 갖춘 것이어야 한다. 붓끝이 날카롭고 예리한 것(尖), 굽은 털이 없이 길이가 가지런하게 정돈되어 있으면서 털이 고루 펴 있는 것(齊), 붓털의 모양에 모가 없이 둥근 것(圓), 붓털 하나하나가 곧으면서 수명이 긴 것(健). 이 네 가지 모두를 갖춰야 좋은 붓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덕목이 빠져 있다. 붓을 만드는 사람, 곧 필장(筆匠)의 혼과 정성이 깃든 것이라야 비로소 좋은 붓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열한 살 철들 무렵부터 붓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여 47년여. 반백 년 가까이 한 가지 일에 매달려온 붓 장인 김종춘 씨(58). 이렇게 오랜 세월을 붓 만들기에 전념하고 있는 필장은 모두 합쳐봐야 전국에서 다섯 손가락을 꼽을 정도라고 한다.
김종춘 씨는 청년 시절, 전국 각지를 두루 섭렵하며 살았다. 오로지 좋은 붓 만드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다. 고향 밀양에서 맺은 붓의 명장 김형찬 선생과의 인연을 계기로 대전의 박원서 선생, 광주의 안종선 선생, 유재풍 선생 등 좋은 붓을 만드는 스승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다않고 찾아다녔다. 이렇게 배우고 익힌 솜씨로 만든 붓을 판매하기 위해 그는 또 다시 대구, 부산, 서울 등지로 거처를 옮겨 다니면서 붓 만드는 일을 계속해 왔다. 그리고 울산에 터를 잡은 건 지난 94년. 현재 김종춘 씨는 중구 성남동에서 ‘죽림칠현’이라는 필방을 운영하고 있다.
김종춘 씨는 지난 1년 동안 붓 만드는 일을 거의 하지 못했다. 붓 파는 일로 부산엘 다녀오다 교통사고를 당하면서 건강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다시 본격적으로 붓 만드는 일에 몰입하기 시작했다. 이 작업에는 그에게 천군만마 같은 ‘동지’도 함께 한다. 둘째딸 근애 씨(28)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부터 아버지가 하는 일을 어깨 너머로 지켜보곤 하더니 어느 날 아버지의 뒤를 이어 붓을 만들겠다고 팔을 걷어붙인 기특한 딸이라고 한다.
붓은 한 달에 300여 개 정도를 만드는데 공정에 들어가는 정성과 땀을 생각하면 이마저 그리 넉넉한 시간은 아니라고 한다. 장남 중엽 씨(30)는 현재 서예 공부를 하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울산에서 서예학원을 운영하다 부족한 서예공부를 더 해야겠다며 상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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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을 만드는 데는 약 150번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붓 만들 때 가장 기본이 되는, 길고 짧은 털을 섞는 정모 과정도 대개 다섯 번의 손길을 거쳐야 제대로 된 붓이 나옵니다. 그리고 정모된 털을 일일이 저울에 달아 대필, 중필, 소필과 같이 규격에 맞도록 해야 합니다. 이때 1g의 오차도 없어야 붓관에 정확히 들어맞게 되지요.”
붓의 굵기가 조정되고, 실 묶음이 끝나면 잔털이 빠지지 않을 때까지 빗질을 한다. 마치 사랑스런 아이를 다루듯 조심조심, 섬세한 그의 손놀림에서 아름다움이 느껴졌다. 이때 그의 손끝으로 매만져진 붓털이 여물고 탱탱해야 그 작업은 비로소 끝이 난다.
김종춘 씨가 주로 만드는 붓은 붓글씨용과 사군자를 그리는 붓이 대부분이다. ‘죽림칠현’ 필방에는 서예대전이나 미술대전에서 입상한 작가들의 작품이 벽면을 가득 메우고 있다. 모두 그가 만든 붓으로 그려진 것들이다.
야생말 꼬리털로 만든 ‘마미붓’
김종춘 씨가 만든 붓 중에는 ‘마미붓’이라는 것이 있다. 몽골 지역의 초원에서 사는 말 꼬리털로 만든다. 이 붓으로 1988년에는 대구공예품대전에서 입선하는 영예도 안았다.
“처음 마미붓을 만들었을 때는 서울의 인사동이나 전국 각지에서 이 붓을 찾는 이가 참 많았습니다. 이 큰 붓을 하나 만드는 데 하루가 꼬박 걸립니다. 특히 마미붓은 모의 기름빼기 과정이 아주 중요해요. 기름빼기를 알맞게 해야 모가 먹물을 잘 흡수하고, 또 힘 있는 붓이 되기 때문이지요.”
당시 마미붓은 말 그대로 대히트였다. 이 붓이 탄생하기까지 김종춘 씨는 이미 사용해 본 작가들의 이야기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며 보다 나은 작품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요즘에도 인사동 거리 필방에서 만날 수 있는 갈색모의 붓들은 거의가 김종춘 씨 작품이라고 한다. 그가 갈색모의 붓을 고집하는 이유는 중국에서 들여오는 화학과정을 거친 탈색모는 대개가 먹물에 들어가면 금세 모가 손상되기 때문이다.
붓은 재질에 따라 양모붓, 황모붓, 장액붓 등 총 80여 가지에 이른다. 양모붓은 너구리 등 털로 만들며, 황모붓은 족제비 꼬리털, 장액붓은 노루 겨드랑이 털로 만든다. 이와 같은 붓 제작의 첫걸음은 좋은 털을 구하는 데서 결정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그는 똑같은 모라도 정성이 실리면 또 다른 붓으로 태어난다고 믿는다.
붓관은 보통 대나무가 이용되는데 1년생 대로 써야 한다. 1년이 지나면 잘 갈라지고, 더욱이 칼을 대면 수수깡처럼 ‘쩍’ 하고 갈라지곤 한다. 마미붓의 붓관은 무늿결이 고운 물푸레나무로 한다.
붓 만들기의 마지막 공정은 풀 먹이는 일로 끝이 난다. 장인의 손을 떠나 붓이 사용자의 손에 건네지기까지 상품의 가치를 높이고, 오래 보관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전에는 계란 노른자가 주로 쓰이기도 했지만, 붓을 다시 빨아 써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에 김종춘 씨는 해초를 끓여 사용하고 있다.
그 동안 김종춘 씨로부터 붓 만드는 법을 배운 제자만 해도 수십여 명에 이른다. 하지만 이제껏 붓 제작을 계속하고 있는 제자는 5~6명 정도밖에 남아 있지 않다고.
“붓 제작으로 일확천금을 꿈꾸었다면 이 일을 계속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게 붓 만드는 일은 인고의 시간을 보내는 것과 같았어요. 제가 처음 붓을 만들던 때를 생각하면 그래도 요즘은 사정이 많이 나아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의 붓과의 인연은 한국전쟁의 상흔이 채 가시지 않은 1957년, 고향 밀양의 붓 공장에서 일하면서부터다. 온 가족이 쌀 몇 되로 겨우 생활을 꾸려가던 시절이었다. 당시 붓 공장엘 다니면서 그는 한 달에 만여 개씩의 붓을 만들었다. 붓 한 자루에 3원, 큰 것은 10원씩 했다. 그것마저 여름이 되면 붓의 수요가 없어 붓 만드는 날보다 노는 날이 더 많았다. 하지만 그는 손에서 붓을 놓지 않았다. 그렇게 3년을 하고 나니 그에게 붓 만드는 연장과 독립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그 후에도 그는 소문난 붓 제작의 명장들을 찾아다니며 붓 만드는 기술연마에 게으르지 않았다.
오로지 생계유지를 위해 뛰어든 붓 만드는 일. 하지만 붓만으로는 밥 먹고 살아가기가 힘들어지자 그는 돈 되는 다른 일을 찾아 나선 적도 있었다. 부산에 있는 한 목재공장에 취직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3개월을 넘기지 못했다. 그리고 그는 다시 붓 만드는 일로 돌아왔다. 붓글씨를 쓸 때 붓끝을 버리지 않고, 오던 방향으로 반드시 되돌아가야 하는, 회봉(回鋒)처럼 말이다.
김종춘 씨는 얼마 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무형문화재 모필장(毛筆匠) 부문 기능보유자 지정 신청서를 냈다. 현재 해당 관청의 실사가 남아 있긴 하지만, 이번에 지정되면 전국에서 처음으로 무형문화재 모필장 부문 기능보유자가 탄생하게 된다. 지금까지 붓과 관련한 지방 무형문화재는 나왔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모필장이 지정된 예는 없기 때문이다.
모필장이 되고 나면 김종춘 씨에겐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관광공예촌을 만들어 그곳에서 붓 만드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이 문화 사업은 일하고 싶어도 일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많은 장애인들과 함께 꾸려가고 싶은 게 그의 소망이기도 하다.
“제 스승이셨던 김형찬 선생님이 바로 장애인이셨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당신의 장애를 딛고 붓 만드는 일로 성공하신 분이시지요. 이제 그 분의 훌륭한 가르침을 계승한다는 의미에서라도 제 꿈이 꼭 이뤄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겠지요.”
그리고 꿈 하나가 더 있다. ‘필장 김종춘’이라는 이름을 새겨 넣은 명품 붓을 만드는 일이다. 무릇 대가에서부터 어린 학생들에게까지 누구든지 하나쯤 꼭 갖고 싶어 하는, 그런 붓을 만드는 일이다.
사보 <카프로> 2001년 봄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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