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사회학과
세상의 절반인 여성. 그러나 과학기술계 내부에서의 여성은 여전히 ‘소수자’의 입장이다. 지난 7월 열렸던 ‘과학기술, 여성을 만나다’ 포럼에 발제 및 토론자로 참여했던 여성 과학자들은 ‘소수자’의 입장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자리였다. 이날 포럼에 ‘유일한’ 남성 토론자로 자리를 함께 했던 국민대학교 사회학과 김환석 교수. 그 역시 여성 과학자들의 소수자 입장에 동의하며,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도 다문화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과학기술사회학자로서 김환석 교수는 그 이유를 과학기술계 내부에서 찾고 있다. 동서고금을 통해 보더라도 과학기술 영역에는 남성적인 가치, 시각, 문화가 지배해 왔다고 그는 전제한다. 따라서 그는 이제부터라도 과학기술계에서 여성의 역할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고, 제도적인 뒷받침 또한 마련되어야 한다는 의견에도 동의한다. 김 교수는 우리 과학기술계도 이젠 남성과 여성, 여성과 남성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다문화주의로 나아가야 할 때라고 거듭 강조한다. 남성 중심문화로 전개되고 있는 과학기술계가 여성 과학자라는 소수자들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다문화주의란 쉽게 이야기하자면 ‘차이, 다름’의 인정이거든요. 어떤 다른 문화가 어느 것의 강자의 문화에 그냥 적응하고,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강자이건 약자이건 다름을 인정 받으면서 공존하고, 소통하고, 또 보다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느냐 하는 것이거든요. 그렇다면 과학기술계에서도 남성 과학자와 여성 과학자가 서로를 이해하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론을 함께 찾아야 한다는 것이지요.”
여성 고유의 문화와 가치 존중해야
지난 6월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International Institute of Management Development)이 발간한 ‘세계 경쟁력 연감’에서 우리나라의 과학경쟁력은 세계 7위로 발표된 바 있다. 그런데 현재 국내 여성과학자의 R&D참여율은 12.9%. 세계 상위권의 과학경쟁력에 비하자면, 여성 과학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한 수준이다.
김 교수는 보다 많은 여성 과학자들이 남성 중심적으로 운영되는 연구소나 실험실 등에 진출, 소신껏 일할 수 있는 사회문화적 토대부터 형성되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한 변화과정 속에서 과학기술 발전의 내용 또한 남성 지배적 문화의 성과물들에서 보다 인간적이고, 환경친화적인 패러다임으로 바뀌지 않겠느냐는 전망과 기대도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려면 여성 과학인들도 우선 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꼬집는다. 여성 과학자들이 절대 다수인 남성 문화에 어쩔 수 없이 적응하고 동화되려고 하기보다는, 여성 고유의 가치와 문화를 지키면서 그들의 중심부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세포유전학자 바버라 매클린톡(1902-1992)의 예를 들려준다. 과학사에서 여성 과학자에 대한 인식과, 그 존재감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사례다. 매클린톡은 생명체의 유전 현상 중 흔히 나타나는 ‘유전자의 자리바꿈’을 최초로 발견해낸 과학자다. 그녀는 수십 년 동안 이 연구를 홀로 이루어냈다. 그런데 이 연구에는 현미경만 동원된 게 아니었다. 연구의 매개체였던 옥수수를 온몸으로, 혹은 마음으로 느끼고, 그것의 내면까지를 들여다볼 수 있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발견이었다. 김 교수는 생명체를 바라보는 그녀의 감성적인 접근방법이 위대한 발견으로 이어진 경우라고 했다.
“바버라 매클린톡은 1983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습니다. 그녀가 ‘유전자 자리바꿈’을 처음 발견한 건1950년대 말입니다. 하지만 동료 과학자들, 곧 남성 과학자들의 고정관념과 편견 때문에 그녀의 주장은 30여 년 넘게 과학계에서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지요. 결국 70년대 말 들어 그녀의 주장과 유사한 발견이 속속 밝혀지면서 그녀가 옳았다는 게 입증되지요.”
과학기술의 지나친 상업화 견제 필요
여성들의 사회 진출은 과학기술의 발달에 기대어 더욱 가속화되어 왔다. 특히 여성들이 가사노동을 비롯하여 시간의 제약으로부터 자유로워진 것 또한, 과학기술의 진보 덕분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여성의 사회진출을 촉진시키는 등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지만, 동시에 과학기술이 불러올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경계도 게을러선 안 된다고 그는 당부한다. 과학기술의 지나친 상업화는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하고, 고착화시킬 수 있다는 사회학자로서의 우려다. 점차 정복돼 가고 있는 암 치료와 줄기세포 연구가 그 한 예라고 말한다. 고비용이 지출되는 첨단연구는 설혹 치료법이 나온다 하더라도 구매력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무용지물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는 특히 국가생명윤리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생명공학과 연구윤리 문제에 지속적인 관심을 쏟고 있기도 하다. 그는 우리 과학기술계에도 ‘성찰적 과학자’가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기술 진전에 따른 사회적인 문제들을 하나하나 줄여나가자면 과학을 바라보는 성찰적 자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게 사회학자로서의 그의 견해다.
‘과학기술의 민주화’라는 주제에 대해 주로 연구하고 토론해 온 ‘시민과학센터’ 소장을 맡은 지 올해로 10년째인 김 교수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과학기술사회학자이기도 하다. 사회학도였던 그가 과학기술과 인연을 맺은 건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에 근무하게 되면서다. 70년대 말, KIST에서 과학기술 정책연구를 위해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등 사화과학 전공자들을 필요로 하던 시기였다. 그곳에서 5년간 과학기술 정책연구를 하다 영국으로 유학, 과학기술사회학에 대한 본격적인 공부를 시작했다. ‘인간과 사회’에 대해 공부했던 사회학에, ‘과학기술’을 접목한 새로운 공부를 하게 된 것이다.
1930년대 말, 로버트 K. 머튼이 창시한 과학(기술)사회학은 과학기술이 발전하면서 사회와 상호작용이 일어나는 과정을 주로 연구하는 학문. 과학기술의 진전이 가속화되면서 과학기술사회학도 빠르게 성장했다. 그러나 아직 국내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사회학 분야여서 김환석 교수는 앞으로 해야 할 연구와 과제가 더욱 많다고도 했다.
과학기술부 매거진 <과학기술혁신뉴스> 2007년 12월호 기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이 있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가 육명심 선생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0) | 2008.08.27 |
---|---|
춘천의 '사과나무', 마임이스트 유진규 (0) | 2008.08.27 |
진달래를 닮았던 시인, 김원자 씨 (0) | 2008.08.13 |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봉사의 참의미 - 이해숙 선생님 (0) | 2008.08.11 |
"배우는 관객에게 감동의 눈물로서 봉사하지요"-연극배우 전무송 씨 (0) | 2008.08.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