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사랑의 길> 사진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매탄고등학교 이해숙 교사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기에 어머니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머니와 같은 마음으로, 사회의 그늘진 곳을 찾아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해 온 수원시 매탄고 이해숙 교사. 그는 여러 자원봉사 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실천해온 교사로서,
또한 시민봉사단체를 이끄는 사회활동가로서 자원봉사가 청소년 문제를, 가정을,
나아가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큰 동력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했다.
7교시 수업을 막 끝낸 그녀가 ‘자원봉사센터’ 문을 열고 들어섰다.
자그마한 체구에다, 서글서글하면서도 소탈한 인상. 초면이지만 낯설지가 않았다.
그건 아마도 그녀가 우리네 여느 자애로운 어머니 얼굴과 퍽이나 닮아 있어서일 게다.
경기교육자원봉사단체협의회를 비롯하여 현재 참여하고 이끄는 봉사단체만 4곳.
전국을 누비며 한 자원봉사 강연이 900여 차례.
또 그녀로 인해 자원봉사를 새로 시작한 사람만도 대략 6만여 명이 넘는다고 한다.
수원시 매탄고 이해숙 교사(54세). 그녀로 하여금 40여 년 넘는 세월을 열정적인 자원봉사자로 살아가게 하는 힘. 그 에너지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서 온 것일까? 그녀는, 유년시절 어머니의 삶에 녹아 있던 이웃사랑 실천에서 자연스레 체득된 것이라 했다.
“1960년대 여느 농촌마을이 그러했듯 그리 풍족하달 수 없는 농촌 살림이었지만,
제 어머니는 끼니를 거르는 동네 어르신이나 걸인, 어려운 이웃에게 늘 베푸는 삶을 사셨어요.
그러나 그 당시에는 그저 ‘정을 나눈다’고 말하지 ‘자원봉사’라는 개념을 딱히 쓰진 않았잖아요.
하지만 그때의 어머니는 제게 자원봉사를 몸소 가르쳐주신, 선답자의 모습이셨던 셈이지요.”
그런데 그녀가 중1이 될 무렵, 어머니가 지병으로 작고하면서 가정형편도 더욱 기울어졌다.
이 교사는 어머니의 빈자리를 채워가며, 가정경제를 도맡다시피 했다.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어야만 했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그녀가 결코 놓치지 않았던 것은 긍정적인 사고였다.
낮에는 화장품 외판을 하며 가족의 생계를 돕고, 밤에는 야학에서 공부를 하였다.
4H 청소년 활동 등 이런저런 지역사회의 봉사활동에도 꾸준히 참여할 정도로 의협심 또한 남다른 그녀였다.
이러한 역동성은 결국 중단한 학교 공부를 계속할 수 있는 에너지로 이어지게 했다.
청신고등공민학교를 거쳐 그의 나이 스물두 살, 늦깎이 여고생이 된 것이다.
3년 후 이어진 충남대 재학시절에도 이 교사는 횃불 야학을 만드는 등 봉사활동은 여전히 계속 유지해 나갔다.
천원의 행복으로 만드는 ‘행복공동체’
대전여고 1학년 때의 일로 이 교사는 회상했다.
이 일은 후에 그녀가 평생을 자원봉사 교사로 헌신하며 살아가도록 하는 전환점이 되었노라 그는 기억한다. 당시 이 교사는 급우(후배)들과 함께 대전에 있는 한 영아원엘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그때 그곳에서 마주했던 가슴 아팠던 장면 장면들은,
이 교사가 이제껏 그토록 많은 영아원, 또는 양로원을 정기적으로 찾지 않으면 안 되는
운명적인 순간이 되게 해 주었다.
그녀에게 봉사는 이젠 습관이다. 아니 어쩌면 신념에 더 가깝기도 하다.
지난 10월 21일에는 시간을 내어 음성 ‘꽃동네’에 다녀왔다.
그곳에서 이 교사는 오웅진 신부로부터 ‘꽃동네 홍보대사’ 임명장을 건네받았다.
오 신부는 ‘꽃동네 1호 홍보대사’의 임명장을 친필로 써 주었더랬다.
그녀는 이 홍보대사라는 막중한 책무를 평생 동안 명예롭게 지켜갈 것임을 스스로에게 약속했다 한다.
“요즈음에는 ‘천원의 행복, 까꿍사랑 실천 릴레이’ 프로그램을 준비하느라 조금 바빠요.
시민단체 굿 네이버스와 공동으로 기획하는 프로그램이지요. ‘까꿍’이라는 말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바로 조건 없는 사랑이 들어 있어요. 나도 사랑하고, 이웃도 사랑하고, 이 에너지를 지구촌 사랑으로 이어갈 수 있게 하자는 게 목적이지요. 1000원씩 100만 명이면 10억원이 되고, 1000만 명이면 100억원이 되지요.”
그녀가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한국자원복지개발원의 요즈음 봉사 프로그램의 키워드는 바로 ‘까꿍’이다. 이 ‘까꿍사랑’의 기본은 ‘행복공동체’ 만들기다.
1000원이라는 적은 돈을 모아 사랑을 실천하면서, 우리 다함께 행복해지자는 것이다.
우선 1차 목표는 ‘행복한 가정 만들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건강한 가정은 더욱 건강하게, 어려운 가정은 보다 행복해질 수 있게 하자는 운동을 펴 나갈 계획이다.
전국 4천개 학급, ‘한 학급 한 생명 살리기 운동’ 동참
이 교사는 지난해 아프리카 케냐에서 있었던 해외봉사 프로그램에 참가했다.
첫 해외봉사였다. 5년 전, 에티오피아에 다녀온 한 일간지 기자가 건넨 기행문.
거기서 가슴에 ‘쿵 하고’ 와 닿는 문구 하나를 발견하면서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2만원이면 죽어가는 사람, 한 명을 살릴 수 있다.’ 이 하나의 문장은,
이 교사 개인적으로는 세계봉사를 바라보는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이 교사는 우선 세계적인 구호단체 월드비전 경기지부와 접촉, 후원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기로 했다.
그녀가 주도적으로 참여한 ‘한 학급 한 생명 살리기 운동’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우선 참가하는 학생들에게 모금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갖게 했다.
40명인 한 학급에서 2만원을 모금하려면 1인당 500원씩의 ‘기부’가 필요했다.
이 운동은 우선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기부 문화를 체험케 하는 교육적 효과도 무엇보다 중요했다. 각 교실의 게시판에는 후원하는 외국 친구에 대한 사진과 신상을 게시, 학생들에게 기부에 대한 동기부여도 확실하게 심어 주었다. 경기도의 1600개 학급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현재 전국에서 4천개 학급이 참여 중이다.
“케냐 현장에 도착해 보니 눈물이 앞을 가리더군요. 눈물 없이는 볼 수 없는 참상이 펼쳐져 있었어요. 마실 수 있는 물 한모금만 있어도 ‘하느님, 감사합니다!’ 할 정도였으니까요. 우리에게도 어려운 시절이 있었다지만, 마실 수 있는 물은 펑펑 나왔었잖아요. 아프리카 기아 현장에 가 보니 앞으로 제가 하고자 하는 일이 얼마만큼 가치 있는 일인지 알 수 있었지요.”
그녀는 현재 케냐, 방글라데시, 베트남 어린이 각각 세 명에게 매달 2만원씩의 후원금을 보내고 있다. 케냐 어린이는 큰딸, 방글라데시는 둘째딸 이름으로 하는 후원이다. 베트남 어린이는 막내 몫이다. 딸들이 경제활동을 하게 되면, 어머니에 이어 지속적인 후원을 하겠다는 약속을 이미 받아낸 터다.
이 교사의 통장에서 매달 이렇게 후원금과 기부금으로 빠져나가는 돈은 얼추 40만원 가까이 된다. 가끔 이 교사는 요양원에 있는 장애 어린이들을 집으로 초대해 며칠씩 함께 생활하곤 한다.
이는 세 자녀들에게 봉사를 체험하고, 몸으로 익힐 수 있게 하는 가장 생생한 현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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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봉사의 참의미
이 교사가 활동하는 경기교육자원봉사단체협의회(경자협)는 언제나, 누구든지 함께 할 수 있는 교사봉사단체다. 현직의 교사와 재학생(나아가 졸업생) 학부모, 그리고 퇴직 교사단이 주축이 되어 봉사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또 실천하는 모임이다. 이 모임은 1995년 전국 중, 고교생들에게 봉사의무시간이 지정되면서 뜻을 같이 한 30명의 교사가 활동을 시작, 현재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는 핵심 멤버는 100여 명 정도다.
“교사가 재직 학교에서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하다 보니, 봉사 교육프로그램의 지속성이 끊기는 게 아쉬운 부분이기도 해요. 따라서 이에 대한 보완책으로 학부모지도자의 역할이 실제로 커지기도 했고요. 제가 부임했던 학교마다 학부모지도자의 활동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어 저 또한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학교에서 일부 문제가 있는 청소년들에게는 학부모지도자가 일대일 멘토가 되어 후원과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이는 등 정성을 다하고 있기도 하고요.”
이 교사가 앞으로 학생들과 함께 지향할 봉사활동의 형태는 ‘전문가 봉사’라고 했다. 가령 의대와 한의대를 지망하는 학생들의 봉사 소모임인 ‘의토리’처럼, 사진가를 꿈꾸는 학생들은 독거노인 영정사진 찍어드리기, 또 꽃에 관심 있는 수원농생고 학생이라면 원예치료 봉사에 참여하는 사례와 같은 경우다.
앞으로는 언제, 어떻게, 무엇이 필요한지 요구에 따라가는 ‘맞춤식 봉사’의 의미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이유에서다. 현재 매탄고에는 4~6명이 한 팀을 이루는 자원봉사 소모임이 24팀이나 구성돼 있다. 학생들은 졸업 후에도 현재의 소모임 그대로 봉사를 계속해 나갈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준비해 가는 중이다.
“진심에서 우러난 자원봉사와 학생들의 성적은 정비례합니다. 용인 수지고에 재직할 때 제가 만났던 기민이라는 학생이 그 좋은 본보기죠. 봉사를 하기 전, 그 친구는 과연 4년제 대학에 갈 수 있을까 할 정도의 성적이었어요. 그런데 봉사를 한 후 달라지더니, 지금 그 친구는 이른바 명문대 경영학과에 다니고 있어요. 사실 이 같은 사례는 셀 수 없이 많아요. 결국은 내가 가장 크게 얻는 것이 바로 봉사지요.”
이 교사는 올 1년 동안 10여 명의 집필진과 함께 <행복한 삶과 자원봉사>라는 고교용 교재도 개발, 현재 경기도교육청의 인증절차를 남겨놓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로 자원봉사에 대해 체계적으로 담은 교과서다. 앞으로 중학교, 초등학교용 교재까지 계속해서 발간할 예정이라 한다.
이번 겨울방학에는 경자협, 한국복지재단과 함께 초등학교 교사, 학부모 멘토 15명, 어려운 환경의 어린이 15명을 인솔하고 베트남에 봉사를 다녀올 예정이라는 이해숙 교사. 그녀가 들려주는, 봉사를 잘 할 수 있는 방법은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봉사는 ‘혼자서 하려하지 말라’는 것.
모여서 함께 하다 보면, 그 참의미도 덩달아 더 커지는 까닭에서다.
<함께하는 사랑의 길> 2007년 11/12월호 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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