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이 있다

"배우는 관객에게 감동의 눈물로서 봉사하지요"-연극배우 전무송 씨

어휘소 2008. 8. 11. 22:45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경기도문화의전당 경기도립극단 전무송 예술감독

 

 

“봉사라는 건 무엇보다 현실적으로 ‘실행’해야 한다는 뜻을 담고 있지요.

그러나 실행한다는 것이 또 쉬운 일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제가 무대에서 하는 연극이라는 행위도

결국 그러한 맥락과 같은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곤 합니다.

성인들의 가르침의 참뜻 혹은 참다운 삶의 진리를 관객과 함께 나누는 일,

그러한 진리를 전파하고 소통하는 일이 배우의 숙명인 것처럼 말입니다.”

 

연극을 관람함으로써 잃어버린 선(善)의 모습을 찾아내고, 음악을 들음으로써 악한 마음이 순화되게 하는 일. 그러한 순기능 또한 연극배우가 자신의 영역에서 할 수 있는 사회에 대한 봉사라고 그는 여기고 있었다.

올해로 2년째 경기도립극단을 이끌고 있는 전무송 예술감독.

그는 취임과 함께 경기도가 추진 중인 노블레스 오블리주 실천운동에 가장 먼저 서명했다.

이후 그는 문화예술인들이 자신의 영역에서 지향할 수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에도 많은 생각을 정리하는 계기가 되었다.

무대에 선 그의 언어와 몸짓을 매개로, 관객이 감사하는 마음을 찾아내게 하는 일.

상대방을 존중하고 이해하는 마음이 스며들도록 하는 배려가 그가 ‘배우이자 봉사자’로서 해야 할 몫이기도 하단다.

그러한 소명을 잊지 않는 배우의 이름으로 관객과 소통해온 지 40년. 어느덧 그도 이순(耳順)을 넘어서고 있다.


소외지역 찾아가는 문화공연, ‘모세혈관문화운동’

문화적으로 소외된 계층을 위한 다양한 공연 프로그램들이 준비되고 있는 건 다행스런 일이기도 하다.

경기도문화의전당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모세혈관문화운동’은

현재 주 2~3회씩 공연신청이 있는 곳을 직접 방문하고 있다.

 

“‘모세혈관문화운동’과 같은 프로그램은 앞으로 전액 무료공연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국립극단이나 도립과 같이 중앙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프로그램인 만큼

그런 방향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는데 아직 시기적으로 이른 감도 있겠지요.

예산문제도 그럴 테고, 또 관객 입장에서도 무료공연이라 하면 일단 품질과 격이 낮을 것이라는

선입견부터 갖는 거 같아요. 이런 문제를 불식시키려면 우선 질 좋은 공연프로그램도 마련돼야 할 테고요.”

 

극단 단원들이 활동하는 멘토 제도 또한 참가 대상자들의 반응이 퍽 좋은 편이라고 한다.

이는 지역사회의 소규모학교나 시설, 어린이집, 장애인학교 등에 단원들이 전문 강사로 참여하는 교육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여름, 필자는 남양주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이들 ‘멘토 교사’들의 수업 현장을 직접 만난 적이 있었다.

 ‘멘토 선생님’들의 장단을 따라 하는, 초등학생들의 고사리 손끝에서 퍼져나가던 북과 꽹과리 등의 흥겨운 우리 소리들은

그때 멋진 앙상블이 되었었다.


“우리 극단에서 무대에 올리는 작품들은 전원이 극단 내의 배우들만으로 운영됩니다.

제가 예술감독을 맡게 된 후 외부의 유명 배우,

이른바 스타를 출연시키면 어떻겠느냐는 제안도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죠.

유명한 스타를 고집하면 당장의 관객유입 효과는 좀 더 있겠지만,

더 멀리 내다보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했지요.”


배우는 관객에게 ‘감동의 눈물’로서 봉사

그는 지난 1년여의 과정으로 금세 큰 변화가 있으리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고 했다.

앞으로 최소 5년, 10년을 내다보면서 극단 구성원들이 정신적으로 일체감이 되는 시기까지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곳 극단에서의 지난 1년이 ‘목수가 재목을 가지고 집을 짓는 시기였다’고 소개했다.

재목이 없으면 자기만의 집을 제대로 지을 수 없듯이,

단원들의 기량을 ‘재목’으로 만드는 일이 우선적인 과제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단원들의, 연극배우로서의 정신적인 재무장도 강력한 주문사항이었다 한다.

다행히 단원들은 신임 예술감독의 요청사항들을 차질 없이 지켜주어 예전보다 단합도 잘 되는 것 같아 만족스럽다고 했다.

그는 단원들에게 지금 열심히 하면 언젠가는 반드시 좋은 배우로서 명성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온다는 말로

그들을 독려하기도 한다. 그가 부임하고, 단원들의 사기도 한층 올라간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단다.

 

“배우들은 정신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혼이 깃듭니다.

작품 속의 활자 하나하나는 자기가 들어가야 할 정확한 자리를 찾고 있는데,

배우에게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안 되지요.

혼이 깃들어 있지 않은 연기는 관객들이 금세 알아챕니다. 거기에는 감동이 있을 리가 없지요.”

 

이 말은 연극을 처음 시작하던 시기, 은사였던 이해랑 선생이 그에게 들려주던 채찍이기도 했다.

당시 스승은, 그의 연기에 혼신이 실리지 않았다며

‘내면이 없어, 내면이 없어’ 라는

꾸지람을 자주 들려주었었다고 했다.

 

지난해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이 끝나고, 눈가가 젖은 관객 한 사람이 그를 찾아왔다.

연극을 보면서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앞으로도 좋은 공연을 많이 해 달라는 당부를 하더란다.

비록 허구지만, 무대 위 주인공의 인생에 연민을 느끼며 눈물을 흘릴 수 있다는 건

그만큼 그의 마음이 순화되었다는 표징일 것이기도 하다.

그런 관객과 만날 때 그는 배우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럴 때면, 배우가 관객에게 할 수 있는 ‘봉사’라는 게 바로 이런 거구나 생각한단다.


꿈속에서조차 연기 연습한다는 배우로서의 치열한 고뇌

연극에 막 입문하고 한동안, 그의 소원이 방 한 칸을 가져보는 것이었을 정도로

연극배우의 삶은 생활인으로서는 고된 길이기도 했다.

하지만 현재 그의 두 자녀(딸 전현아 씨, 아들 전진우 씨)와 사위(김진만 연출가)까지,

그의 가족은 모두 연극인이다. 처음에 현아 씨가 배우가 된다고 했을 때는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후에 결혼을 하게 되면, 가정을 꾸리는 일은 사위의 몫일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게 또 인생이지 않느냐며 웃었다.

처음에 결혼을 반대했던 ‘연극연출가 사위’는 이제 아들처럼 든든함이 느껴져 좋다고 했다.

아들 진우 씨마저 배우가 되려 하자 반대했지만, 이젠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허락을 해 주었다고 한다.

 

그의 배우로서의 치열한 고뇌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 하나.

그가 작품에 들어가게 되면, 꿈속에서조차 무대 위에서 동선을 그리며,

연습하는 자신의 모습을 반드시 보아야 비로소 안심하게 된다고 한다.

 

“저는 ‘제대로’라는 이 말 참 좋아합니다.

아이들에게도, 후배들에게도 좋은 배우가 되려면 제대로 보고, 제대로 듣고, 제대로 느끼라고 말합니다.

그러면 올바른 생각을 하게 될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올바른 행위가 나올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에요.

하지만 이 ‘제대로’ 하기가 힘이 드는 건 사실이에요.”

 

그에게 “감독님은 아세요?” 하고 묻자 “아뇨. 아직 저도 몰라요. 아직도 풀어가는 과정이에요” 하며 웃는다.

 

임기가 끝날 때까지 그는 3개의 작품을 더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특히 중반 쯤 올릴 예정인 <리어왕>은 기대가 크다고 한다.

<리어왕>을 통해 오늘날 가족의 본질적인 이야기들을 맘껏 풀어볼 예정이다.

세 번째 작품은 우리의 창작극을 준비 중이다.

40여 년의 무대 인생을 살아온 연극배우 전무송.

그럼에도 여전히 무대 위에서 그려질 인간의 본성에 대해 끊임없이 탐구하고,

관찰하고, 상상하기를 멈추지 않는 그이기도 하다.

 


<함께하는 사랑의 길>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