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과 사람 사이에 길이 있다

당당하게 늙읍시다-서울대 박상철 교수 인터뷰

어휘소 2008. 8. 10. 03:38

 

 

 

 

  서울대학교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박상철 교수

 

 

과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평균수명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과학기술은 또한 고령화 사회 구성원들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막중한 역할도 맡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UN의 기준에 따르면,

총인구 중 65세 인구가 7% 이상이면 고령화 사회, 14% 이상이면 고령 사회,

20% 이상이면 초고령 사회로 분류된다. 이를 기준으로 볼 때,

우리나라는 이미 2000년에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으며, 2018년이면 고령 사회,

2026년이 되면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게 될 전망이다.


 

젊은 세포와 노화 세포가 균일한 강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되면 어느 쪽이 더 잘 견딜까?

일반적인 통념대로라면 젊은 세포가 당연히 더 잘 견뎌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옳은 답이 아니다. 단지 ‘그럴 것이다’는 추정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인 권위지 <네이처>에 발표됐던 결과다.

 

2002년 신년호에 실렸던 이 연구논문의 주인공은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생화학교실 박상철 교수다.

그는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장, 노화세포사멸연구센터장, 국제노인학회장 등 노화와 관련된 국내외적인 학회장을 역임하면서, 현재 이 분야의 세계적인 권위자로 인정받는 과학자다.

 

‘젊은 세포와 노화 세포 실험’에 대한 박 교수의 연구결과는 당시 의학계에서도 새로운 충격이었다.

더욱이, 단지 세포 실험에 한정된 결과일 뿐, 개체에 대한 실험결과는 다를 것이라는 반론마저 제기됐었다. 하지만 젊은 쥐와 늙은 쥐에 스트레스를 가하며 실험을 계속한 결과, 젊은 쥐의 간과 심장에서 더 많은 손상이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결국 이 연구는 노화에 대한 기존의 개념과 세간의 인식을 수정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기초 암 연구에서 노화연구로 방향 전환

“기존에는 노화라고 하면 누구나, 필연적으로, 시간이 흐르면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운명론이 지배적이었잖아요.

노화의 1차 조건을 세포가 늙는다고 본 것이지요. 하지만 저는 노화를 결정하는 요인을 ‘환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저는 노화가 단순히 시간개념이 아니라, 세포가 여러 ‘다양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적응현상’으로 보고 있는 거지요. 곧 저는 노화가 생명체의 생존을 위한 중요하고 진지한 노력의 결과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노화연구에 본격적으로 매달리기 전, 그는 생화학교실에서 기초 암 연구를 주로 해 왔다.

정상세포가 암세포로 전이되는 과정을 연구하다 일부는 암세포가 되고,

그 과정에서 세포가 노화된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기초 암 연구 대신, 노화연구로 방향 전환을 한 시기도 이 무렵이다.

 

“상처가 날 경우 젊은 세포는 빨리 낫습니다. 대개 노화 세포는 그저 늙어서 치유가 늦다고 믿었지요.

그런데 노화 세포에는 증식인자의 반응을 억제하는 성분이 많아진다는 걸 실험으로 확인할 수 있었지요. 따라서 이 성분을 제거하면, 노화 세포의 손상도 젊은 세포만큼 빨리 회복될 수 있다는 가능성도 확인했고요.”

 

이후부터 그는 노화도 ‘고칠 수 있다’는 확신이 생겼다. 이 때문에 그의 노화연구 성취에 대해 국내외 학계에서는 ‘리스토어(restore)학파’라는 또 다른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그는 이 연구결과를 사회에 적용하기로 했다. 노화의 종적 관찰연구를 시작으로,

2001년에는 전국을 누비며 노화와 장수의 상관관계를 푸는 열쇠인 ‘100세인 조사’도 실시했다. 이 프로젝트에는 서울대의 의학, 가족학, 식품영양학, 사회복지학, 환경생태학, 경제학, 인류학과 교수들이 함께했다.

4년 동안 현장에서 계속된 조사와 연구 결과, 100세까지 건강을 누리며 장수하는 데는 역시 노인들의 식생활, 가족과 지역사회와의 상관관계 등 생활패턴이 무엇보다 큰 요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에겐 ‘노화는 부정적인 개념으로 바라볼 것이 아니라, 또한 치료될 수 있다’는 믿음이 한층 더 굳어지는 계기였다.


‘누워 있는 사람 없는’ 고령화 사회 만들어야

서울대 노화고령사회연구소는 지난 9월 20일, 노인건강 및 생활과 관련된 연구결과를 시리즈로 엮은 6권의 책을 펴냈다. 서울대 출판부와 공동 기획한 ‘제3기 인생 길라잡이 시리즈’다.

이 책에는 노인 정신건강, 노화에 따른 신체변화, 노인을 위한 정보화기기사용법 등이 각각 담겼다.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자는 취지로 만든 이 책은 내년 봄까지 20권이 완간된다. 그는 고령화 사회를 맞아 과학기술이 떠맡아야 할 10대 과제를 제안한 바 있다. 우선 노화시스템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이다. 그는 우선 생물학적인 면에서, 생명체에 대한 시스템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또한 세포의 가소성과 환경과의 상호작용에서 오는 변화를 집중 연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노화하면서 암 발병률도 점점 높아지고 있는 만큼, 세포의 형질전환 및 사멸에 대한 연구, 노화와 면역연구 등도 뒤따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또 노인들이 안전하게 걷고 움직일 수 있는 이동성 확보 방법, 그리고 노인들이 눈으로 보고, 듣고, 느끼게 될 감각기능 연구, 노인들의 일상생활을 도울 수 있는 인공지능 로봇 연구 등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고령화 사회에서 그 구성원들이 인간으로서의 존엄성과, 삶의 질을 높여줄 노화과학(aging technology)은 의학, 의공학, 치학, 생명공학과 인지과학, 나아가 사회과학 분야까지 아우르는 종합과학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대 교수인 그가 춤의 안무를 연구했다면, 사람들은 고개를 갸웃거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현재 전국에서 10만여 명의 노인이 즐기고 있다는 ‘장수춤’ 기획자다.

이 엉뚱한(?) 구상은 그가 탑골공원에 자주 들르면서 비롯됐다.

그곳에 온종일 쪼그려 앉은 노인들을 보며, 그들을 ‘일으켜 세워 움직이게 하자’는 취지로 만든 운동프로그램이 ‘장수춤’이다. 그는 점, 선, 면으로 이어지는 동작 하나하나에서 노인들에게 미칠 운동량을 측정하기 위해 1년 반 동안 직접 우리의 전통 춤사위를 배우기도 했다.

 

박 교수는 성공적인 노년은 ‘당당한 노화(confident aging)’여야 한다고 말한다.

당당하고, 즐거운 노년을 위해서는 ‘3do 원칙’이 필요하단다.

“I will do, I can do, Lets do.”다.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을, 당당하게 함께하는 노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고령 사회 진입을 10여 년 남겨두고, 누구든지 원하면 80세까지 일할 수 있는 사회의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상적인 고령화 사회는 ‘누워 있는 사람이 없는 세상’입니다.”

 

곧 이순(耳順)을 바라보는 노화과학자의 목소리에 힘이 실려 있다.

 

 

과학기술부 발간 <과학기술혁신뉴스>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