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외양을 가진 한 사내가 무대 위에 서 있었다.
그가 부르려는 노래가 ‘오페라 아리아’라고 했을 때,
객석에서는 찬바람마저 감돌았다.
‘그 품격 있는 노래를 정말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과 함께.
그러나 그가 오페라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Nessun Dorma)’를 막 부르기 시작했을 때,
술렁이던 객석은 일순간 고요해졌다.
영국 iTV1의 일반인을 대상으로 하는 가수선발 프로그램 ‘브리튼스 갓 탤런트’.
그날 심사를 맡은 한 사람인 사이먼 코웰은 거만한 자세로 팔짱을 낀 채,
“아니, 오페라를 부른다고?” 하는 심드렁한 표정으로 무대 아래 앉아 있었다.
그러나 그가 부르기 시작한 노래가 중반부를 넘어설 즈음,
무대 위 주인공은 더 이상 그들의 뇌리 속에 각인된,
볼품없고 서글픈 표정을 짓는 그가 아니었다.
방청객들은 이내 흐트러진 자세를 곧추세우며, 그가 들려주는 노래에 매료되어 갔다.
노래가 끝나자 사람들은 모두 일어서서 기립박수로 환호했다.
그 모습의 동영상은 금세 전 영국은 물론, 유튜브를 통해 삽시간에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고된 일상 속에서도 자신의 꿈을 놓지 않고 살아온 중년의 한 사내.
그가 ‘오페라 가수’라는 평생의 꿈을 기어이 이루어 내고야 마는 순간이었다.
올해 나이 서른여섯.
영국 웨일스의 한 도시에서 휴대전화 판매원으로 일하던 폴 포츠.
그가 바로 이 반전(反轉) 드라마를 직접 써내려간 주인공이다.
영국의 주간지 <더 선>과 BBC 방송은 지난 7월, 폴 포츠의 이 드라마틱했던 인생이야기를
앞 다투어 소개했다. 폴 포츠는 부인 줄리 앤과 단란한 가정을 꾸미고 사는 평범한 가장이었다.
그러나 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오페라 가수를 향한 꿈이 있었다.
그는 루치아노 파바로티를 늘 자신의 우상으로 삼으며 노래를 불렀다.
그가 처음 청중들 앞에서 오페라를 부른 건 1998년, 영국의 한 노래자랑에서였다.
그 이듬해에는 영국 iTV의 또 다른 노래 경연 프로그램이었던
‘마이 카인드 오브 뮤직’에 출연해 약 1500만 원의 상금을 받으며 두각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용기를 얻은 그는 오페라 가수가 되기 위해 많은 유명 오페라 회사의 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는 번번이 외면당했다.
사진: 소니BMG뮤직 제공
‘그에게 찾아온 단 한 번의 기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방송에서 받은 상금과 저금통장을 털어 이탈리아로 오페라 유학을 감행했다.
이 때 그는 자신의 우상이었던 파바로티와 조우하면서 오페라 가수에 대한 열망은 더욱 커져갔다.
하지만 2003년, 그에겐 뜻밖에도 병마가 줄지어서 찾아온다.
그리고 이어지는 교통사고.
병석에 누워 있는 2년 동안, 사고 후유증에 따른 성대 이상으로
더 이상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진단까지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는 휴대폰 판매원이라는 일상으로 복귀하면서, 오페라 가수에 대한 꿈을 조금씩 다시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오랜 망설임 끝에 ‘브리튼스 갓 탤런트’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 것이다.
그로부터 한 달 뒤.
그는 비로소 오페라 가수의 오랜 꿈을 이루어냈다.
음반회사와 정식 계약을 맺고 데뷔앨범을 선보인 것이다.
음반 타이틀은 그가 가수라는 꿈에 이르는 길을 잘 설명해 주듯 ‘One Chance’.
음반에 실린, 그가 직접 골랐다는 10곡은
그의 ‘지난했던 삶의 추억과 기억들을 불러 모으는 특별한 것들’이라고 그는 밝히고 있다.
그가 출연하는 ‘브리튼스 갓 탤런트’를 지켜보던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한다.
‘우리는 지금 탄광에서 다이아몬드를 발견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어디 그뿐인가.
그는 올 연말 ‘브리튼스 갓 탤런트’의 최종 우승자에게 주어지는 특전인,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를 위한 ‘2007 로열 버라이어티 퍼포먼스’의 귀한 초대 손님이다.
(2007년 10월 두산산업개발 발간, 메가로그 카피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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