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마당 21> 사진
십 년을 내다보고 ‘양궁 꿈나무’ 기른다
지난 15년 동안 체육교사로서 우리나라 양궁 꿈나무들을 키우는 데 앞장서 온 경북고등학교 정규성 감독. 세계 최강국이라는 우리나라 양궁의 빛나는 영광 뒤에는 정 교사가 어린 ‘양궁 꿈나무’들과 함께 뛰며 흘린 굵은 땀방울도 함께 있었다.
한 나라의 ‘백년지대계’가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라면, ‘십년지대계’는 바로 나무를 심는 일이라고 한다. 올해로 교직생활 15년째. 경북고등학교(교장 성훈) 정규성 체육교사의 교직 ‘십년지대계’ 역시 ‘나무’를 심는 일이었다. 바로 그가 재직해 온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 줄곧 ‘양궁 꿈나무들’을 가르쳐 온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 ‘나무’들에선 튼실한 열매가 한창 익어가고 있는 중이다.
그렇게 정 교사가 키워 온 ‘양궁 꿈나무’들은 지난해 주니어 한국대표로 아시아 양궁대회에 나가 개인과 단체전에서 모두 우승하는 등 현재 한국 양궁의 대들보로 성장해 있다. 주장을 맡고 있는 3학년 김노을 선수를 비롯하여 곽민준, 정재황 선수 등 9명으로 결성된 경북고 양궁부는 정 교사의 땀과 열정으로 일궈낸 학교의 자랑이기도 하다.
93년 대서중학교서 양궁과 첫 인연
정 교사가 양궁과 인연을 맺은 건 지난 93년. 칠곡중학교에 이은 그의 두 번째 부임지 대서중학교에 재직할 때부터였다. 그가 처음 양궁부를 맡기로 했을 때 선수라곤 각 학년별로 3명에 불과한, 말 그대로 유명무실한 팀이었다.
“처음에 학교로부터 양궁부를 맡으라는 보직을 받았을 때 참으로 난감했었습니다. 학생들이 연습하는 것을 지켜보니 노는 것 반, 연습 반 그렇게 선수 생활을 하고 있었어요. 그 때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때부터 교육청을 비롯하여 사방으로 뛰어다니며 양궁부 재건을 위해 여러 곳에 도움을 요청했지요.”
그렇게 백방으로 뛰어다닌 노력으로 정 교사는 대서중학교에 양궁연습장을 만들 수 있었다. 또 양궁에 소질이 있는 학생들을 발굴하고, 학부모들과의 면담을 통해 선수들을 충원해 나갔다. 기술 지도를 맡아줄 코치도 새로 영입했다. 정 교사는 학생들에게 모자라는 체력 훈련과 심리적인 부분을 따로 맡아 지도에 나섰다. 이즈음, 정 교사의 양궁에 대한 각별한 애정은 경북도내에서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고, 양궁 감독으로서도 그 임무를 훌륭하게 소화해 내고 있었다. 그로부터 5년 후인 98년, 정 교사는 침체에 빠져 있는 경북고 양궁부를 부활시켜달라는 당시 도상욱 교감(현재 정 교사의 첫 부임지였던 칠곡중학교 교장)의 간곡한 청을 받고 경북고로 자리를 옮겼다.
“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개인전 은메달을 땄던 정재헌 선수가 저희 경북고 출신입니다. 정재헌 선수 졸업 이후에 저희 학교 양궁부가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있었어요. 그 때 대서중학교 양궁부의 성공적인 재창단을 지켜보신 분들이 저를 스카웃해 주셨지요(웃음).”
정 교사가 경북고로 자리를 옮겨오면서부터 양궁부에는 새로운 변화의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가 몰고 온 새 바람은 예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대회 성적이 말해주고 있었다. 그가 부임하기 전인 98년, 양궁부는 전국 대회에 수 차례 나가 보았지만 노 메달의 수모를 겪고 있었다. 하지만 이듬해인 99년 4월부터 8월까지 4차례의 전국 규모 대회에 참가한 양궁부는 금메달 5개, 은메달 4개, 동메달 2개라는 놀라운 성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졸업한 김하늘, 박원균, 김태환 세 선수가 단체전은 물론 개인전에서도 대회를 휩쓸다시피 한 것이다. 지난 2000년의 성적은 이보다 더 좋았다. 이미 전국대회를 석권했던 선배들을 따라 신입생인 김노을, 곽민준 선수까지 가세해 경북고 양궁부는 ‘불패의 신화’를 지닌 강팀으로 변모해 있었다.
일본 선수와 펼쳤던 대역전 드라마
정 교사의 부임 이후 학교에서는 양궁부 선수들이 이용하는 차량을 일반 승용차에서 승합차로 교체했다. 정 교사의 특별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 교사는 이른 아침, 이 차량으로 선수들의 등교를 돕고 있다. 김노을 선수를 비롯한 몇몇 선수들의 집과 학교와의 거리가 1시간 30분여는 족히 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게임을 앞두고는 학교에서 숙식까지 함께 하며 합숙을 하지만 평소에는 집에서 등하교를 해야 하는 까닭이다. 정 교사의 부임 이후 선수들에겐 합숙 때마다 선수 전원이 마음놓고 쉴 수 있는 숙소가 따로 마련된 것도 소득이라면 큰 소득이다.
“저희 양궁부의 올해 꿈은 전국체전에 나가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는 겁니다. 모두 6개의 메달이 걸려 있어요. 제가 이런 말하면 다른 학교 팀은 ‘우린 손놓고 있으란 말인가?’ 할 지도 모르지만 무리한 목표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만큼 저희 선수들을 믿고 있습니다. 3학년 선수 3명은 물론 2학년인 배성웅, 이호준 선수도 뛰어난 기량을 가졌고요.”
요즈음 정 교사는 제자들은 물론 임경근 코치도 모르게, 팔공산에 자주 오른다. 그 곳에 있는 갓바위라는 곳이 최종 목적지. 갓바위라면 대구 시민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곳이다. 그 곳에 가서 부처님께 소원을 빌면 꼭 한 가지는 들어준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바위이다. 지난 6월까지 정 교사는 20여 차례 그 곳엘 다녀왔다. 그리고 앞으로 80차례 더 다녀올 예정이다. 이렇게 100번을 채우고 나면 앞으로 어떤 대회에 나가더라도 선수들이 긴장하지 않고 제 실력을 발휘해 좋은 성적을 내줄 것 같은 믿음에서다.
지난 10여 년 동안 정 교사가 양궁 감독을 맡아 오면서 가장 잊혀지지 않는 대회가 있다. 2년 전 11월, 홍콩에서 있었던 ‘2000 아시아 양궁 서킷’이다. 정 교사는 이 대회에 경북고 양궁부를 인솔하고 참가했다. 이 대회 개인전 결승에서 김하늘 선수가 일본 선수와 펼친 대역전극은 한 편의 드라마였다. 3엔드까지 김하늘 선수는 일본 이노우에 선수에 3점을 뒤지고 있었다. 마지막 남은 4엔드 3발. 하늘이의 첫 번째 활이 10점을 명중했다. 바짝 초조해진 일본 선수가 실수하면서 7점. 드디어 동점이었다. 두 번째 화살은 모두 10점. 마침내 마지막 활 시위를 당겼을 때 하늘인 10점, 일본 선수는 9점이었다. ‘한국 대표’라는 부담감을 안고 참가한 그의 첫 해외 원정 경기에서 마침내 우승을 일궈낸 것이다.
“단체전에서도 저희 팀은 똑같이 일본과 경기를 치렀습니다. 이 경기에서도 저희가 역전하며 우승을 했지요. 하지만 저는 그때 우승의 감격을 느껴보기 이전에 표정관리 하느라고 무척 애를 먹었었습니다. 그때 일본 팀의 선수들은 시드니 올림픽에 참가했던 국가대표들이었고, 저희는 고교 대표선수들이었거든요.”
이 대회 참가를 위해 홍콩으로 떠나던 날의 풍경 역시 정 교사는 잊을 수가 없다. 그는 이른 아침, 항공편을 이용한 서울행을 갑자기 취소하고 새벽 3시 50분, 승용차 편으로 고속도로를 달려 서울로 이동했다. 만에 하나 대구공항의 안개로 인해 비행기가 뜨지 못할 수도 있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2년 후 반드시 올림픽 메달 따겠다”
학생들의 건강한 학교 생활을 책임지는 체육 교사로서, 그리고 양궁부 감독교사로서 정 교사에게 늘 영광과 환희의 순간만이 기억되고 있는 건 아니다. 양궁부원 중 아무리 열심히 훈련을 해도 실력이 오르지 않거나, 부진한 대회 성적으로 진로가 불확실한 제자들이 중도에 꿈을 포기하거나 좌절할 때 그는 누구보다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특히 초등학교 때부터 양궁밖에 모르던 학생 선수들이 고교 2년이 되도록 성적이 오르지 않아 휴학까지 하는 걸 지켜봐야 할 땐 지도 교사로서 절망감마저 느낄 때도 있다.
또 지난해에는 그가 체육 수업을 맡고 있는 1학년 제자 중 백혈병으로 고생하는 이종재 학생 때문에 한동안 마음이 아파야 했다. 항상 밝게 웃음이 떠나질 않던 학생이었는데 백혈병과 사투를 벌이게 되면서 정 교사는 물론 그의 담임 교사, 그리고 경북고 전교생이 참여하여 이종재 학생 돕는 일에 발벗고 나서기도 했다. 이종재 학생은 현재 경북대 병원에서 골수 이식 수술을 준비중에 있다.
정 교사는 요즈음 양궁부 감독으로서 마음의 짐 하나를 덜어낸 듯한 느낌이다. 이번 경북고 졸업생 3인방은 상무와 실업팀으로 이미 스카우트되어 졸업 후의 진로가 결정됐기 때문이다. 정 교사는 장차 이들 노을이와 민준이, 재황이가 국가대표가 되어 온 국민을 들뜨게 할 큰 일을 해 낼 거라고 믿고 있다. 스승의 이런 믿음을 아는 선수들은 2004년 올림픽에서 반드시 금메달을 따겠다는 투지를 불태우는 중이다.
“저의 오늘이 있기까지 제게도 도움을 주신 은사님이 여러 분 계십니다. 저희 학교 성훈 교장 선생님도 그 중 한 분이시죠. 성 교장 선생님은 바로 제 중학교 은사님이기도 하세요. 침체돼 있던 저희 학교 양궁부 선수들이 국가대표급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도 바로 학교에서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아끼지 않은 덕분입니다.” 매년 부족하다 싶은 양궁부의 예산을 3배로 늘려준 것도, 야구연습장 위쪽 공터에 축대를 쌓고 잔디를 깔아 양궁 전용 연습장이 새로 생긴 것도 모두 성훈 교장의 아낌없는 지원과 배려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30도를 웃도는 뙤약볕 속의 양궁 연습장. 표적을 향하고 있는 양궁부원들의 매운 눈매를 좇아 화살은 ‘골드’를 명중하고 있다. 정 교사는 선수들 곁에서 그 흐뭇한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자, 파이팅하자!” 3교시 체육시간에 들어가기에 앞서 정 교사와 학생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교육마당 21> 2002년 7월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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