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다녀왔습니다

소외 겪는 아이들의 자애로운 어머니, 윤주 교사

어휘소 2008. 10. 1. 12:03

경기도 분당정보산업고등학교 윤주 교사


가을은 온 강산이 축제의 계절이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정보산업고교 3학년부장인 윤주 교사. 그녀 역시 재학생들의 가을축제 준비를 점검하랴, 진학상담을 위해 학교에 온 졸업생들을 맞이하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가을축제를 코앞에 둔 학생들의 표정이 약간은 상기돼 있었다. 점심시간이 막 끝나가려는 시각. 교실에서는 교실대로, 또 동아리 방에서는 동아리대로 축제 때 뽐낼 솜씨들을 연마하느라 학생들의 손과 발은 연신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그러한 학생들 사이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유쾌한 웃음소리와 유연한 몸짓들…. 바로 그 곁엔 학생들의 유쾌한 난장을 자애로운 눈빛으로 지켜봐 주는 한 분의 선생님이 계셨다. 이곳 분당정보산업고등학교에 부임한 지 올해로 4년째인 윤주 교사다.

 

 

                                    -<교육마당 21> 웹사이트 사진-

 


교직생활 22년 중 14년 남짓한 시간을 실업계 고교에서 보낸 윤 교사. 그 나머지 7년 역시 첫 부임지였던, 용인여고에 새로 개설된 ‘산업체특별학급’의 야간학급을 맡았었다. 그간의 지도경험을 비추어 보면 인문계 고교와는 달리 실업계 고교의 학생 지도는 좀 더 친밀하고, 세심한 배려를 기울여야 한다는 게 윤 교사가 들려준 첫마디였다.


윤 교사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3학년 부장을 맡고 있다. 실업계 고교의 3학년 부장이니만큼 진학지도의 어려움은 다소 덜할 것이라는 기자의 생각은 어느새 비켜가고 말았다. 이곳 분당정보고 학생들의 대학 진학률은 80%에 이른다고 윤 교사는 들려준다. 때문에 윤 교사는 요즘 3학년 학생들의 진학과 취업지도에 골몰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다. 윤 교사가 느끼기에 실업계 고교의 3학년처럼 힘들고, 어려운 시기도 없을 거라고 믿고 있다.


“며칠 전에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자랑한다는 수원의 반도체회사에 열 명의 학생이 취업을 했습니다. 또 취업을 원하는 학생들이 보다 많은 기회를 얻을 수 있는 현장실습 시간도 많이 가지려고 하고요. 저희 학교는 학생들의 진학욕구가 다른 지역에 비해 유달리 강한 편에 속하지만 취업지도에도 소홀할 수는 없지요.”


윤 교사는 3학년 부장은 졸업한 이후 학생들의 취업도 신경을 써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는 전문대를 졸업하거나, 군대를 제대한 후에도 윤 교사에게 계속 연락을 해 오는 제자들도 있어 이들의 취업을 알아봐 줄 때도 많다고 한다. 윤 교사는 이를 제자들에 대한 완벽한 ‘애프터서비스’라며 웃는다.


“진학과 취업지도, 실업계 3학년들의 애환 달래야죠”

“2000년도 전에는 취업 위주의 진로지도를 주로 했습니다. 하지만 전문대학의 실업계 특별전형 실시 이후 80% 이상의 학생들이 진학을 합니다. 특히 실업계는 동일계 전형이라 고등학교의 전공과 연계된 선택을 하게 되는데, 과거에 비해 전문대학 거의 모든 학과에 입학이 가능하기 때문에 다양한 진로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학생들에게 되도록이면 보다 전문적인 기능습득과 관련된 진학을 하라고 권유합니다.”

때로는 수학능력은 간과한 채 무조건 입학하고 보자는 식의 진로 선택이 1년도 못 채우고 중도에 그만두는 사례로 나타나기도 한다며 안타까워한다. 학생들의 대학진학만큼은 좀 더 내실 있는 진로지도가 있어야겠다는 윤 교사의 다짐이다. 학생 개인마다의 삶에 깊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지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음… 어머니라고 해야 할까? 수업도 중요하지만, 선생님은 언제나 우리들의 사람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2학년 8반 5교시 회계 시간. 윤 교사의 수업광경을 지켜보면서 맨 뒷자리의 이현웅 학생에게 기자가 내민 쪽지에 적어준 ‘선생님 자랑’의 전문 그대로를 옮긴 것이다.


윤 교사는 수업시간에 무엇보다도 학생들에게 자격증 취득을 강조한다. 특히 특기적성교육에서는 전산회계 과목을 가르치며 의무검정시험 합격률도 85% 이상으로 높여 놓았다.

수업은 우선 재미있어야 한다는 게 윤 교사의 신조다. 더군다나 학생들이 지루해 할 수 있는 회계의 경우 더욱 역동적인 수업이 필요하다. 학생들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잦은 질문은 필수이고, 평가도 하면서 잘 하는 학생에게는 ‘포상’도 주어진다. 윤 교사가 수업에 들어갈 때면 자그마한 봉투 하나가 손에 들려 있는데 여기엔 학생들에게 나눠줄 사탕이 가득 들어 있다. 기자가 건넨 메모지에 적어 준, 선생님 자랑의 또 다른 대목이다. 이번엔 민환이가 적은 것이다.


“수업도 재밌게 해 주시지만, 알기 쉽게 설명해 주세요. 수업시간에 먹는 사탕 맛은 또 꿀맛이고요.”


윤 교사에겐 유달리 남다른 사연을 지닌 제자들이 많다. 그 중엔 재학생도 있고, 이미 20여 년의 세월을 훌쩍 뛰어 넘은 중년의 제자도 있다. 취재진과 마주앉은 동안에도 윤 교사의 핸드폰은 문자메시지의 도착을 알리는 신호음이 여러 차례 울렸다. 확인해 보니 거의가 졸업한 제자들에게서 온 것이었다. 그 동안 윤 교사의 제자 사랑이 어떠했는지를 대신 말해주는 순간이기도 했다.


산업체 특별학급에서 시작된 씩씩했던 제자들과의 만남

“첫 부임지였던 용인여고에서의 7년 동안은 참으로 힘든 일이 많았습니다. 산업체 특별학급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60명의 학생 중에서 중도 탈락자가 많았어요. 그래서 회사도 찾아가고, 집으로도 찾아가고 학생들의 학업 포기를 막아보기 위해 애를 써야 했던 시기였어요.”


22년 전 그 때, 반장을 맡았던 양재숙 학생과 윤 교사는 요즘도 가끔씩 소식을 주고받는다. 사실 학생이었던 재숙인 윤 교사와 동갑인 데다 오히려 생일은 선생님보다도 빨랐다. 하지만 언제나 예의바르고, 다소곳한 미소와 함께 학급을 리드해 나가던 반장 재숙인 용인에 살면서 지금도 선생님께 안부를 잊지 않고 물어오곤 한다. 당시 병원에서 근무하던 경숙이라는 제자는 직접 주사기를 들고 와 선생님의 간염항체 검사를 직접 하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소중하지 않은 결혼 앨범이 없겠지만, 윤 교사에겐 19년 전의 더욱이 값진 결혼 앨범이 한 권 있다. 용인여고 재직할 당시 결혼에 즈음하여 제자들이 손수 카드를 만들고, 축하메시지를 적고, 그림을 그려 제작해 준 앨범이다. 취재진에게 한 장 한 장 앨범을 소개하면서 어렵게 학창시절을 보냈던 옛 제자들을 떠올리며 윤 교사는 금세 옛 추억으로 빠져든다.


“저희 같은 아이들에게 잘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윤 교사가 실업계 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제자에게 들었던 잊히지 않는 말이라고 했다.


“실업계 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 대부분은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혹은 오르지 않는 성적 때문에 중학교 때까지 소외감을 느꼈던 학생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제 교육신념도 자연스럽게 ‘학생들 스스로가 소외된 주변인이 아닌, 삶의 주인공이라고 느끼게 하자’는 것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너는 나와 아주 특별한 관계라는 것을 느끼게 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관심을 갖고, 또 사랑을 나누는 존재로서 서로를 느끼게 하는 것. 이것이 윤 교사가 변치 않고 지켜온 학생들의 지도법이다. 현재는 3학년 부장을 맡아 담임을 맡고 있지 않지만, 교직 22년 중 18년 동안 꼬박 담임교사를 했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교육철학을 짐작하게 한다. 윤 교사는 특히 담임했던 학생들을 2년 동안 계속 맡아 담임하는 것으로 학생지도의 상승효과를 체험하곤 했다. 이를테면 1학년 때 담임을 하고, 다시 3학년 때 담임을 맡는 식이다. 그래서 학년 말이 되면 가장 듣고 싶은 말이 “선생님, 담임 또 해주세요.” 라는 말이었다고 한다.


2년씩 담임 맡아 학생지도 실효성 높여

하지만 어느 해인가, 정말 다시 맡고 싶지 않은 반이 있었다. 1학년 담임하면서 무진 애를 태웠던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이들은 선생님이 싫지 않은 내색이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아이들은 ‘3학년 때 다시 만나자’는 인사를 건네 오곤 하였다. 하지만 윤 교사는 담임을 비켜갈 요량으로 그 아이들과는 무관한 교과 편성을 지원해 놓고 있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교과 때문에 이번에 담임을 할 수 없노라고 말했다.


 “그런데 담임 발표를 하는 날 새벽에,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어요. 아침에 학교에 가 교과를 다시 바꾸고 그 아이들의 담임을 하게 되었지요. 그 해 아이들과 함께 많은 우여곡절도 겪었지만 아이들이 끝내는 제 마음을 헤아려주고, 절 믿고 따르며 한 해를 보낼 수 있었습니다.”


윤주 교사는 졸업한 후에도 꾸준히 제자들이 찾아오거나, 연락을 해 오는 걸 보면 학생들의 인생에서 교사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지를 절감하고 있다. 지난해에는 전문대를 졸업한 한 제자가 “선생님의 취업 지원 덕에 직장도 얻고, 그곳에서 든든한 남자친구도 만났다”며 조심스럽게 결혼식 주례를 부탁해 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제자의 그 고마워하는 마음만 받고, 주례는 정년퇴임한 교장선생님께 인계했다.

제자 중에는 이제 어엿한 전자상거래 회사를 경영하는 사장도 탄생했다. 6년 전 졸업생 항렬 군이 그 주인공. 학창시절에는 윤 교사의 속을 까맣게 태울 정도로 말썽꾸러기였던 학생이었다. 인하공업전문대를 나와 컴퓨터회사를 다니던 그는 현재 기업의 CEO로 변신했다.


“항렬이처럼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변에서 맴돌던 학생들에게는 이전과는 다른 하나의 역할을 부여하고, 책임을 다하게 합니다. 주위의 친구들과 어울릴 수 있는 이벤트도 자주 열고요. 그리고 그 주어진 책임을 잘 수행해 내면 칭찬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윤주 교사는 학생 생활지도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 5년 전 교육대학원에 진학, 상담교육에 대해 학업을 계속하기도 했다. 그가 선택한 논문제목에서 학생생활지도에 대한 그의 관심과 열정을 읽어낼 수 있다.

<학급 홈페이지 활용에 따른 교사·학생간의 친밀감과 신뢰감의 발달>이 바로 그 제목이기 때문이다.

 

교육인적자원부 발간 <교육마당21> 2004년 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