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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동섭 프로의 '악어의 꿈'

어휘소 2010. 2. 10. 15:18

 

 

                                                                                              <Club KPGA> 사진

 

악어, 황금빛 을 품다

 

맹동섭 프로

 

 

연장전에 나갈, 4명의 선수가 가려졌다. 2009년 상금왕 배상문 프로(24․키움증권)와 2위의 김대섭 프로(29․삼화저축은행). 그리고 2008년 2승에 빛나는 황인춘 프로(36․토마토저축은행)도 끼어 있었다. 그리고 또 한 명. 프로에 갓 데뷔한 1년차 루키, 맹동섭 프로(23․ 토마토저축은행)였다. 그간의 우승 관록과 이름값만을 보더라도, 판세는 어김없는 ‘3강 1약’의 구도. 그러나 이러한 예상을 보기 좋게 깨는 것이 또한 골프의 묘미가 아니던가. 4명의 선수가 경기를 모두 마친 결과는? 프로 1년차 루키의 신승, 맹동섭 프로의 우승이었다. 지난해 10월 11일, 제주 라온골프클럽 스톤레이크 코스(파72)에서 열린 SBS코리안투어 조니워커 블루라벨 오픈 최종일 연장전에서의 이야기다.

 

“18홀을 끝내고 나오면서,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을 해봤죠. 내가 여기서 몇 등을 해야 다음해 시드 유지가 될까 하고요. 제가 2010년 시드를 지키는 게 무엇보다 다급했거든요. 그런데 그대로 2위만 유지해도, 시드 확보가 되겠더라고요. 연장전을 하면서 마음이 한결 홀가분해졌죠.”

 

그 때문이었을까. 맹동섭 프로는 연장 세컨드 샷을 핀 2.5m 가까이 붙일 수 있었다. 배상문, 김대섭, 황인춘 프로 역시 좀 긴 거리였지만 모두 버디 기회. 하지만 세 선수의 버디 퍼트는 모두 홀을 비켜나갔고, 맹동섭 프로는 버디에 성공. 프로 데뷔 첫 해에 맛본, 짜릿한 ‘챔피언 퍼팅’의 손맛이었다. 우승 비결을 묻자 “큰 욕심을 내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고 말하던 루키는, 실은 마지막 우승 퍼팅을 앞두고 “평생 동안 내게 몇 번 오지 않을 기회다. 이 공을 넣게 되면, 내 인생이 달라질 것이다.”는 생각이 얼핏 스쳐가긴 하더라며 그는 넉살 좋게 웃었다.

 

그 짜릿했던 생애 첫 우승의 순간. 그는 오른손을 불끈 쥐며, 온몸으로 기뻐하고, 또 환호했다. 그의 더할 수 없이 파워풀한 우승 세레머니는, 그의 친구들과 골퍼들 사이에서 종종 회자되곤 했다. “우승 세레머니 포토제닉 상이 있다면, 올해는 단연 루키 맹동섭의 몫이다!” 라고. 또한 그의 소속사인 토마토저축은행에서는 이 패기 넘치는 루키의 첫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그의 이름이 들어간 저축상품을 따로 선보이기까지 했다.

맹동섭 프로는 아마추어 시절, 국가대표로서 여러 오픈대회에도 참가하면서 차곡차곡 실력을 쌓아온, 될성부른 새내기 골퍼로 일찌감치 주목받았다. 2008년 2부 투어인 캘러웨이 투어 상금왕도 그의 몫이었다. 그해 9월에 참가한 Q스쿨 역시 그는 단 번에 통과했다.

 

 

루키 해의 혹독했던 ‘성장통’

그리고 맞이한 2009년 프로 데뷔 첫해. 프로골퍼로서 상반기 몇 달 동안 그가 겪어야 했던 때늦은 ‘성장통’은 가히 혹독했다. 어렵사리 예선을 통과한 첫 대회가 5월 14일 막을 올린, GS칼텍스 매경오픈이었다. 그 대회 4라운드를 마친 그는, 최종 성적표를 확인하면서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예선을 통과한 선수 중 그는, 맨 꼴찌였다.

“2부 투어에서 상금왕도 해 본 터라 저 나름대로 기대도 컸었는데, 전반기 내내 뜻대로 경기가 풀리지 않았어요. 1부 투어 프로선수로 뛴다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이구나, 그 때 생각하게 됐죠.” 그는 전반기 투어가 끝나면서, 곧바로 두 달여 동안 합숙훈련에 들어갔다. 투어 프로가 되면서 그에겐 몇 가지 변화가 있었는데, 스윙 교정도 그 중 하나였다. 그러면서 전반기 내내 성적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는 게 그가 내린 진단이었다. 7월과 8월, 강도 높은 합숙훈련 이후, 변화를 겪던 스윙자세도 조금씩 좋아졌다. 그는 점차 예전의 자신감을 회복하고, 다시 하반기 대회를 준비할 수 있었다. 이번 겨울에도 그는 두 달여 동안, 미국 하와이에서의 동계훈련 계획을 세워놓았다. 이번 8주 동안의 훈련 프로그램에서 가장 비중을 두는 건 어프로치 훈련. 쇼트 게임 강화가 이번에 진행되는 동계 훈련의 주된 목적이다.

 

그에겐 골퍼로서 마음 수련을 통한 ‘평상심’의 중요성을 일깨워준 대회가 있었다. 바로 9월에 있었던 메리츠 솔모로 오픈이었다. 그는 6위의 성적으로, 이 대회 예선을 통과했다. 그러나 대회 셋째 날. 그는 맥없이 크게 무너지며 ‘천당과 지옥’을 동시에 경험해야 했다. 톱랭커들과의 라운딩에서는 안절부절, 주눅이 들어야 했고, 수많은 갤러리들 앞에서는 한없이 떨어야 했다. 그로서는 생애 첫 톱10을 노려볼 만한 대회였지만, 3라운드 결과 최하위권까지 밀려나고 말았다. 다행히 4라운드에서 가까스로 만회한 최종결과는 23위. 이는 프로 데뷔 후, 그가 거둔 가장 좋은 성적이었다.

 

평소 그는 홍순상 프로를 닮고 싶다며, 입버릇처럼 말하곤 한다. “순상 형은 보면 항상 웃어요. 제게는 부족하다 싶은, 형의 그런 모습을 닮고 싶지요. 어떠한 안 좋은 상황에 놓이더라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그 위기를 탈출해가는 형의 그 여유도 배우고 싶고요.” 홍순상 프로와 함께 골프를 치면서는, 결코 화내는 모습을 그는 본 적이 없단다. 골퍼로서 꼭 고쳐야 할 자신의 단점은, 늘 서두르는 급한 성격이라고. 이를 위해 마음 수련도 하고, 인내심도 키워주는 낚시가 좋을 것 같아 그는 요즘 낚시에도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골프연인들이 지킨 ‘아름다운 약속’

맹동섭 프로의 여자친구는 현재 KLPGA에서 뛰고 있는 임지나 프로다. 이들 동갑내기 ‘골프연인’의 사연은 지난 11월 20일, 제주 롯데스카이힐 골프장에서 깜짝 공개됐다. KLPGA 투어인 ADT캡스챔피언십에서 그가 임지나 프로의 캐디를 맡으면서다.

“제가 성적이 잘 나오면, (임)지나의 시즌 마지막 게임에서 꼭 캐디를 봐 주기로 연초부터 약속이 되어 있었어요. 마침 10월에 첫 승도 했고 해서, 제가 약속대로 캐디를 보겠다고 나섰죠. 덕분에 언론에도 처음 공개가 됐고요.”

조니워커 블루라벨오픈 우승으로 몸값이 한껏 오른 그는, 연인의 캐디를 맡으면서 다시 한 번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 대회에서 임지나 프로는 12위를 차지했다. 첫날, 1라운드를 2위로 산뜻하게 출발한 것에 비하면, 다소 미흡한 감이 없지 않았다며 ‘캐디로서’ 그는 영 아쉬워하는 눈치다. 그보다 3년 먼저 투어를 시작한 임지나 프로는 현재 KLPGA 투어 통산 2승째를 기록 중이다.

 

“지나가 저보다 프로 데뷔도 선배이고, 우승 경험도 많다 보니 제 성적이 좀체 나오지 않을 땐 솔직히 자존심도 상한 게 사실이에요.” 지난 9월 KLPGA 투어 LG전자여자오픈에서 임 프로가 2승째를 거두던 날, 맹동섭 프로는 갤러리들 속에서 그녀를 응원했다. 그리고 그때 그도 다시 한 번, 생애 첫 승에 대한 각오와 전의를 불태웠다고 한다. 그렇게 다진 각오 때문이었을까? 그 역시 곧이어 위너스 클럽의 새로운 멤버로 기꺼이 이름을 올릴 수가 있었다.

 

얼마 전, 11월 26일은 두 연인이 사귄 지 ‘1000일째’ 되는 기념일이었다. 그는 1000일 기념으로 여자친구가 평소 갖고 싶어 했던, 디지털 카메라를 선물했다. 얼마 전에는 그 또한 맘에 꼭 드는 운동화를 임 프로로부터 선물로 받았다며 자랑했다. 같은 프로골퍼이다 보니, 서로의 장단점을 조목조목 조언해 줄 수 있고, 또 늘 바쁘게 쫓기는 일정도 서로 이해할 수 있으니 두 사람 모두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좋은 관계란다. “결혼은 언제쯤……” 이미 예견된 수순의(혹은 수도 없이 들어왔을) 질문이었다는 듯, 그는 웃으며 “어휴, 지나와 저 아직 어린데요…….” 했다.

 

 

또 다른 로망을 향하여!

종종 선배들은 이름 대신, 별명으로 그를 부르며, 놀리곤 한다. “경태 형, 혜동 형 등이 처음에 지어주며 부르기 시작했는데, 그땐 맘에 들지 않았어요. 제 외모를 놀리는 것 같아서죠. 그런데 야생으로 사는 녀석의 특성이, 한 번 물면 절대로 놓지 않는 거잖아요. 그리 생각하니, 프로골퍼로 살아갈 제 캐릭터로 써도 손색없겠더라고요. 요즘은 제 별명 누가 불러주면, 기분 좋아요(웃음).”

그가 듣기 싫어했다던 별명은, 바로 ‘악어’였다(이 대목에서, 그가 귀띔해준 연인 임지나 프로의 별명은 ‘핑크공주’다. 핑크색을 유달리 좋아해서 붙였단다). 2009년 루키 해, 신인왕을 하고 싶었지만, 그 꿈을 2010년까지 유보하게 된 맹동섭 프로(그는 2009년 신인상 부문 4위, 그리고 통산 상금액은 24위를 차지했다). 2010년 하반기에는 일본투어 Q스쿨에도 도전해 볼 계획이다. 또한 새해에는 그의 캐릭터가 된 악어처럼, ‘어떤 기회가 오면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목표도 하나쯤 더 정해 놓았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 더, 20여 년쯤 시간이 더 흐른 후에 꾸게 될 그의 꿈? 그는 아마도 카 레이서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니, 프로골퍼라는 직업을 그만 두고 싶어질 그 어느 때쯤이면,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종목이 카 레이싱이란다. “페라리, 포르셰, 람보르기니 등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이 스포츠카들을 꼭 타 보기 위해서라도, 앞으로 더 열심히 골프 쳐서 우승 상금을 쌓아가야 한다.”며 그는 다시 한 번 웃어보였다.

 

 

<Club KPGA> 2010년 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