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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상은 골프박물관 대표 인터뷰 - 값지고 귀한 페더리 볼(feathery ball)

어휘소 2008. 9. 4. 11:19

 

 

 

얼마 전, 어느 골프 잡지에 재미있는 기사 하나가 실렸다. 국내에서 가장 값이 나가는 골프공과 반대로 가장 값싼 것을 비교하는, 이른바 ‘골프세상, 극과 극’이라는 코너였다.

우선 그 결과부터 엿보자면,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비싼 골프공의 값은 대략 1,100만 원 정도(영국의 5,000파운드)다. 이 골프공의 값은 ‘가격’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치’라는 표현이 더 온당하다는 말도 기사에서는 빼놓지 않고 덧붙였다.

 

참고로 가장 값싼 공은 한 개에 몇 백 원 정도 하는, 실내외 연습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연습용(또는 재활용) 볼이다. 똑같은 골프공이지만 연습장에서 뭇사람들에게 흠씬 두들겨 맞는 신세가 있는가 하면, 귀하게 골프박물관에 ‘모셔져’ 대접을 받는 두 공의 처지를 극명하게 대비시킨 흥미 있는 기사였다.


중고 골프용품점 ‘골프마트’ 서상은 사장. 그에겐 골프를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붙여준 명예스런 직함 하나가 더 있다. 바로 ‘골프박물관장’이라는 직함이다. 강남의 신사동 사거리에서 7호선 논현역 방향으로 가다 보면, 왼쪽으로 600년 골프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낸 ‘골프박물관’이 자리한다. 골프 애호가이자 예찬론자인 서 사장이 사재를 털어 마련한 앤티크 골프용품들을 전시해 놓은 공간이다.

 

사실 이곳에 처음 들르는 이들에겐 어디를 살펴봐도 ‘골프박물관’이란 문패는 따로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중고 골프채를 사고, 팔기 위해 이곳을 찾은 골퍼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면서 이젠 ‘골프박물관’이라는 어엿한 이름도 얻게 됐다고 한다. 한 골프잡지에서 공인(?)했듯이, 국내에서 ‘가장 값지고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던 그 골프 공 역시 서 사장이 소장하고 있는 애장품 중 하나다.


“그 페더리 볼(feathery ball)은 제가 런던 필립스 경매에서 5,000파운드를 주고 구입한 것입니다. 골프공의 대량생산이 시작되기 전인 1850년대 사용되던 공이지요. 골프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사료 중 하나입니다. 페더리 볼은 소나 말의 가죽에 새의 깃털을 눌러 넣은 뒤 봉제해 만든 겁니다. 마치 수공예품과 같이 이 공 하나를 만드는 데 대단한 정성을 기울였다고 합니다. 때문에 그 당시엔 실제로도 공 하나 값이 골프채보다도 더 비쌌다고 합니다.”

 

서 사장은 이러한 가죽 깃털공이 당시 360야드가 넘는 거리를 날았었다는 진기한 기록도 전한다. 하지만 평소 깃털공의 비거리는 200야드를 채 넘지 못하는 정도였다. 박물관에선 이 깃털공 이전에 사용되던 너도밤나무 공(1620년대) 등 골프공의 역사를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연대별로 구분, 전시해 놓았다.


19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부터 깃털 공은 구티 공(gutty ball)에게 자리를 내준다. 구타 페르카 공이라고도 불리는 이 공은 나무에서 채취한 액을 형틀인 몰드에 넣어 구워냈기 때문에 골프공이 대량생산되는 계기가 됐다고 서 사장은 들려준다. 구티 공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비거리가 늘고, 일정한 품질과 적정한 가격을 갖춘 공의 대중화 시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서 사장이 한창 앤티크 골프용품들을 찾아다니던 시절, 어느 경매장에선가 이 구티 공을 굽는 몰드를 만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워낙 희귀한 물건이다 보니 천정부지로 솟는 가격 때문에 그저 바라만 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이곳 박물관엔 모두 2천여 점의 앤티크 골프용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골프공 외에도 1800년대 말과 1900년대 초반에 주로 사용되던 히코리(북미 호두과 나무) 재질의 우드와 아이언, 퍼터 등의 클럽, 골퍼들의 영원한 우상인 톰 모리스 가문에서 사용하던 클럽과 캐디 백, 슈즈, 1800년대의 경기 모습을 마치 사진처럼 정밀하게 스케치한 작가 마이클 브라운의 그림, 최초의 골프장으로 ‘신의 조형물’이라 불리는 세인트 앤드루스 골프코스의 아름다운 그림 등등……. 또 1880년대 공이 귀하던 시절, 사용하는 볼에 이름이나 번호를 새겨 넣던 볼 마크 프레서 등으로 600년 골프 역사의 한 자락을 읽어낼 수도 있다. 3층 전시관 서가를 채우고 있는 수 백 권의 골프 관련 서적 역시 소중한 자료들이다.

 

이들 소장품들은 지난 해 11월까지만 해도, 사무실 2·3층에 흩어져 있던 것을 서 사장이 직접 분류를 하고, 벽에 손수 못을 박아가며 디스플레이를 했다. 전시된 클럽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것은 쇠갈퀴 모양으로 생긴 샌드웨지와, 헤드 부분에 동그랗게 구멍이 뚫린 워터 아이언. 1850년대 즈음, 모래 벙커와 워터 해저드에서 볼을 쳐 올릴 때 사용했던 것들이다. 대장간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어느 이름 모를 대장장이의 혼과 땀이 배어나는 듯한 ‘작품’이다. 지금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는 클럽 헤드 모양이라 더욱 눈길을 끈다.

 

또한 1860년 제1회 브리티시 오픈 챔피언십에서 사용됐던 롱 노즈(우드를 깎아놓은 모습이 긴 코를 닮았다 하여 붙인 이름이다) 우드 퍼터, 맥크윈의 드라이버 등 골프 역사 속에서 위대한 자취를 남기고 간 명 골퍼들의 클럽들도 만날 수 있다.

클럽 외에도 골퍼들에겐 없어서는 안 될 용품이 바로 골프 백. 1895년경으로 추정되는 오스몬드 나무 손잡이 캐디 스탠드, 1925년대에 사용되던 골프백 등 지나간 세월의 풍상이 묻어나는 골프 가방들이 정겨움을 더한다. 또 골퍼들이 사용하는 클럽의 가짓수가 늘어나면서 가방의 크기 또한 점점 커져 가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이곳엔 골프용품 앤티크만 있는 게 아니다. 1800년대, 영국에서 사용됐던 재봉틀에서부터, 실제 옷을 다리기보다는 장식장 한켠에 두고 보기에 딱 좋은 귀엽고 앙증맞은 다리미에 이르기까지 100여 점 가까운 재봉틀과 다리미 등이 전시장을 차지한다. 처음엔 골프 앤티크용품들을 찾기 위해 나선 마켓에서 옛 향수를 자극하는 이들 물품들을 만나 한 점, 두 점 사 모은 것들이다. 이들 생활용품 앤티크들은 인테리어 잡지의 귀한 사진 모델이 돼 주기도 하고, 지난봄엔 모 패션쇼의 소품으로 쓰이는 등 여러 방면에서 유용한 자료가 되고 있다며 서 사장은 자랑한다.

 

서 사장은 이러한 앤티크 용품들을 수집하기 위해 소더비, 필립스, 크리스티 등 세계적인 규모의 경매 시장을 돌아다녔는가 하면, 런던의 앤티크 마켓들을 샅샅이 뒤지곤 했다. 때로는 앤티크 마켓이 선다는 소문이 들려오면 한달음에 영국 런던으로 달려가곤 했다.

 

“우리나라 골프 애호가가 이미 3백만 명을 넘었습니다. 세계에서 네 번째 많은 골프 인구입니다. 하지만 아직도 골프문화는 후진국 수준에 머물고 있는 형편입니다. 골프에 대한 인식도 여전히 관대한 편은 아니지요. 골프 하면 으레 사치와 허세 부리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종목이라는 편견도 없지 않고요.”

 

사실 서상은 사장의 앤티크 골프용품 수집은 취미로 출발한 게 아니다. 골프 입문 시기 역시 87년께로 그리 길지 않은 구력이다. 하지만 그 자신 역시 골프의 매력에 푹 빠지면서 골프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을 바꿔보자는 작은 소망에서 골프에 대한 역사와 자료들을 수집해 나갔다. 이처럼 소박한 마음에서 출발한 것이 어느새 2천여 점이 모이고, 이제 제법 자그마하지만 ‘박물관’의 모양새를 갖추게 된 것이다.

 

그는 요즈음 한 달에 두어 번 정도 필드에 나간다. 여전히 그가 즐겨 사용하는 클럽은 1920년대의 우드와 아이언들이다. 때문에 그가 골프장에 나타나면, 무슨 골동품 구경하듯 그의 클럽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이 몰려들기도 한다.


“골프채는 단지 골프를 하기 위한 도구이자 연장일 뿐입니다. 그러니 100년 이상을 거뜬히 사용할 수도 있는 거지요. 지난 91년 국내에서 처음으로 중고 골프클럽 매장을 연 까닭도 그 때문입니다. 클럽의 90% 이상이 외국산인데 중고용품을 재활용하면 외화 낭비도 막을 수 있게 됩니다. 또 오래 전에 사서 묵혀두는 골프채도 들고 나와 꼭 필요한 사람들과 나눈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지요.”

 

지금까지 80여 년 동안 사용돼 온 우드와 아이언으로 싱글 핸디(그의 핸디캡은 8이다)의 수준급 골프 실력을 쌓은 서 사장이고 보면 그의 ‘연장론’은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인터뷰 내내 골프에 대한 예찬론을 아끼지 않은 서상은 사장. 그는 ‘신사가 갖추어야 할 예절과 매너, 규칙을 중시하고, 정신 수양을 함께 할 수 있는 레포츠 종목으로 골프를 따를 것이 없노라고 주저 없이 말한다.

 

그 옛날, 골프에 대한 인기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들려주면서, 그는 아이러니하게도 ‘골프 금지령’을 예로 들었다. 1457년경, 골프의 발상지인 스코틀랜드에서는 귀족들에게 일 년에 네 차례씩 무술대회에 참가해야 하는 의무가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청년들이 모두 골프에 빠져 지내면서 대회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게 되었다는 것.

 

설상가상이었을까? 일반 서민층에게까지 골프의 인기가 퍼져 나가자 국왕 제임스 2세는 마침내 골프 금지령까지 내리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 조치는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제임스 4세를 비롯하여 스코틀랜드의 국왕들은 모두 골프 애호가였으며, 메리 여왕은 최초의 여성 골퍼로 기록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골프가 소개된 지 꼭 1백년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많은 국내 자료를 접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국내 골프의 역사 찾기에 대해 소홀했던 탓이지요. 이 곳 박물관을 찾는 골프 애호가들도 처음엔 ‘고작해야 중고 골프채 몇 개 있겠지?’ 하며 들어섰다가, 200년 가까이 되는 클럽과 공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면서 모두 놀라곤 한답니다. 앞으로는 재력과 뜻 있는 분들이 나서서 제가 일궈온 것보다 규모도 훨씬 크고, 내용 면에서도 더 알찬 골프박물관이 세워지기를 기대합니다.”

 

요즈음엔 이곳 박물관에 대학에서 골프를 전공하고 있는 학생들의 방문도 잦고, 자료 요청을 해 오는 곳도 많아져 한편 보람도 느껴진다는 서상은 사장. 날마다 그가 아끼는 앤티크 골프용품들을 매만지며 살아가는 때문일까? 그에게서도 중년 신사의 묵직한 중후함이 배어 나오는 듯하다.

 

 현대자동차 사외보 <에쿠스> 2001년 9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