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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우 프로, 신한동해오픈 4연속 버디 그리고 생애 첫 승

어휘소 2010. 4. 26. 16:31

 

                                                     인터뷰를 마치고 포토그래퍼의 사진촬영이 진행되는 동안 잠시 휴식 중,

                                                             기자가 잠깐 사진기를 꺼내들자, 장난스럽게 'V'자를 그려보이며

                                                             환하게 웃던 류현우 프로. ⓒ오솔길                                

 

 

 

 

 

류현우 프로

 

4연속 버디, 그리고 생애 첫 승

 

 

 

 

 

 

시즌 막바지로 향해 가면서도 별반 성적이 나오지 않자 친구들은 그에게 툭, 농담처럼 건네곤 했다.

 

 

“내년 투어 시드권전을 먼저 예약해야 하는 거 아냐?”

 

 

그가 프로 데뷔 7년 만에 이룬, 생애 첫 승을 거두기 불과 3주 전의 일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해마다 KPGA 투어 시드를 확보할 수 있을지를 먼저 걱정해야 했다. 지난해 투어 상금랭킹 65위. 그는 ‘턱걸이’로 올해 코리안투어에 합류했다.

그런데 친구들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그는 곧바로 증명해 보였다. 지난 9월 27일 치러진 2009 한중투어 KEB 인비테이셔널 대회 마지막 날. 그는 챔피언조에서 김대현, 한민규 프로와 라운딩했다. 최종 결과는 3언더파 합계 285타. 이 대회에서 우승한 김대현 프로에 2타 뒤진 3위였다. 이 상금 확보로 그는 일찌감치 2010년 KPGA 코리안투어 시드권을 확정지었다. 친구들의 걱정을 일순간에 날려버린 것이다.

 

 

 

 

‘너무 좋았습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겸손한 마음으로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시작입니다. …….’

그를 인터뷰하기 전, 그의 미니홈피에 가보니 이런 글귀가 있었다. 생애 첫 승을 달성한 다음날, 그가 쓴 글이다. 그는 ‘이제부터 시작이다.’고 다시 마음을 다지고 있었다. 그 미니홈피의 주인장은, 지난 10월 18일 제25회 신한동해오픈에서 우승한 류현우 프로다.

용인 레이크사이드 컨트리클럽 남코스(파72. 7546야드)에서 열린 제25회 신한동해오픈 최종라운드. 류 프로는 공동 6위로 경기를 시작했다. 전반 홀에서 타수를 줄이는 데 실패하면서 첫 승은 남 이야기인 듯 보였다. 그는 12번 홀까지도 버디 2개와 보기 2개를 묶어 타수를 줄이지 못했다. 그러다가 14번 홀부터 승기를 잡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한 홀, 한 홀 4연속 버디를 잡아내며 뒷심을 발휘한 것이다. 18번 홀까지 기록은 10언더파, 합계 206타. 이때 챔피언 조에서 경기를 치르던 고향 후배 김대현 프로가 17번 홀에서 실수하면서 류 프로는 한 타차 선두로 올라섰다. 김대현 프로의 18번 홀. 홀 1.7m 가까이 공을 붙이면서 다시 버디 기회. 이 공이 들어가면 경기는 연장으로 돌입하는 것이다.

 

“경기가 끝난 뒤, 스코어 카드에 사인하고 보니까 대현이 볼이 핀 가까이 붙어 있더라고요. 솔직히 저는 그때까지도 아무런 생각이 없었어요. 1등이든, 2등이든, 오늘 게임은 이 정도면 후회 없이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이날 승리의 여신은 류 프로의 손을 들어주었다. 우승이 확정된 순간, 가장 가까이 있던 디펜딩 챔피언 최경주 프로가 제일 먼저 축하의 악수를 청했고, 이어 양용은 프로도 늦깎이 새내기의 첫 승을 축하해줬다.

 

 

 

‘과욕’으로 길을 잃다

류현우 프로에게 올 10월은 말 그대로 최고였다. 우승 바로 앞 주에 치러진 조니워커 블루라벨오픈에서 그는 공동 5위였다. 이어 25일 끝난 에머슨퍼시픽 힐튼남해오픈에서도 3위를 차지했다.

 

“저로서는 힐튼남해오픈 대회가 무척 아쉬웠죠. 2연속 우승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거든요. 마지막 날 14번 홀까지 공동선두였다가, 15번 홀에서 더블보기를 하는 바람에 우승을 놓쳤죠.”

 

게임을 잃은 건 바로 ‘욕심’ 때문이었다. 그는 힐튼남해오픈 15번 홀 티박스에 들어서면서, 잠시 ‘딴생각’을 했던 것 같다고 털어놓았다. 가령, 마지막 홀에서 홀컵에 떨어진 볼을 꺼내 갤러리들을 향해 멋지게 토스하는 장면 같은……. 이를테면 지난주에 하지 못한 ‘화려한’ 우승 세리머니를 먼저 떠올린 것. 이미 우승자의 짜릿한 경험을 맛본 터라 ‘다시 한 번 더’라는 과욕이 스친 것이다. 이후 그는 그때까지 유지해 오던 페이스를 잃고 말았다.

 

“주니어 시절에도 저는 욕심이 많은 골퍼였던 것 같아요. 그래서 성적을 잘 못 내곤 했죠. 부모님께서도 늘 제게 반드시 1등을 해야 한다고 말씀하셨고요. 그런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제 풀에 지쳐 성적을 내지 못하고, 자신감도 많이 떨어졌어요.”

 

그는 한때 골프를 그만둘까 하는 생각까지 한 적도 있다고. 1999년 무렵, 골프를 시작한 지 15년 만에 딱 한 번 겪은 일이다. 때마침 외환위기가 닥쳐 아버지의 사업도 어려움을 겪던 때였다. 당시 세미프로 테스트에 도전했는데, 두 번 연속 실패했다.

 

“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째 떨어지니까 골프가 진절머리 나게 싫어졌어요. 골프가 저한텐 안 맞는다고 여기게 됐죠. 해서 골프채를 놓아버렸어요. 그런데 일주일쯤 골프채를 잡지 않으니까, 제가 또 딱히 잘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요(웃음).”

 

그는 다시 마음을 고쳐먹었다. ‘다시 한 번 하면 잘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는 부모님께 다시 한 번만 믿고 도와달라고 부탁드렸다. 그렇게 세 번째 도전 만에, 그는 세미프로 테스트에 통과할 수 있었다.

 

 

 

무명골퍼에서 톱5 연속 행진으로

지난해 상금 랭킹 65위에서 올 시즌 6위로의 기분 좋은 상승. 거기엔 어떤 비결이 숨어 있을까. 류 프로는 “상상력을 더한 쇼트게임 덕분이다.”고 했다. 계속해서 게임이 풀리지 않자 그는 어느 날 협회 웹사이트에 접속해서 자신의 지난 경기 기록들을 들여다보았다. 결론은 보기가 너무 많았다. 그는 김태상 레슨프로를 찾아갔다. 스승의 가르침대로, 공을 띄우기 위해서는 몸을 어느 정도 열어야 하는지, 또 어떤 상황에서는 몇 도의 클럽을 꺼내들어야 하는지 등 예전에 느끼지 못한 작은 차이를 일일이 분석했다. 그렇게 스스로 그림을 그려가면서 골프를 치기 시작하자, 비로소 공이 잘 맞았다. 류 프로는 지난 한․중 투어 KEB인비테이셔널 2차 대회를 시작으로, 10월엔 3주 연속 톱5 안에 드는 성적을 냈다.

 

지난해 그의 집 거실 전체에 퍼팅 매트를 깔았다. 매일 1시간 하던 퍼팅 연습을 2시간으로 늘렸고, 그것마저도 성에 차지 않자 다시 서너 시간으로 늘렸다. 가족들로부터 그렇게 연습하고도 잘 안 되느냐는 핀잔까지 감수해야 했지만, 하루 종일이라도 연습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고.

 

그는 요즘 강해진 쇼트게임뿐만 아니라, 드라이버 비거리도 꾸준히 늘고 있다. 지난해 평균 276야드에서, 올 하반기 들어서는 290야드로 늘었다. 앞으로도 비거리 확보를 위한 유연성 강화 운동을 꾸준하게 해나갈 계획이다. 지난 동부화재 프로미배 매치플레이 챔피언십에서는 대선배인 최광수 프로에게 경기운영에 대한 소중한 가르침도 전수받았다며 그는 흡족해 했다. 1라운드 내내 “공을 치는 일보다 최 프로님께 이것저것 궁금한 점을 여쭤보느라 더 분주했다.”는 그였다.

류 프로는 그 대선배가 작성해 놓은, 참가선수들에 대한 꼼꼼한 데이터와 분석표를 보며 많은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A4용지 몇 장 분량의 분석표에는 선수 개인별로 그 선수의 장단점, 경기 유형, 골프 습관 등이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었다. 이기는 게임, 우승하는 방법을 터득하려면, 무엇보다 상대 선수를 잘 읽어야 한다는 걸 배운 경기였다.

 

 

 

골프레슨이 맺어준 백년가약

시즌이 끝났지만 류현우 프로는 여전히 분주한 연말을 보내야 한다. 우선 아시안 투어 퀄리파잉 스쿨을 준비하고 있고, 12월 20일 결혼식을 앞두고 있기 때문. 신한동해오픈 우승 이후 식장 예약 등 결혼식 준비를 하면서 축하인사와 함께 이런저런 대우가 달라졌다며 그는 행복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동갑내기 예비 신부 한유하 씨는 군 제대 후 그가 투어시드를 준비할 때 부산에서 골프레슨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 그가 귀띔하는 그녀의 스코어는 100타 내외. 처음 배울 때는 열심이더니 요즘엔 남자친구 응원하는 일에 더 열중하는 것 같단다.

“예쁘고, 마음씨 착하고, 검소하고……. 데이트도 제 투어 일정에 맞출 수밖에 없으니 제가 미안할 때가 많죠.”

예비 신부 자랑하는 그의 말투는 영락없는 경상도 사내의 투박한 화법이지만, 애정만큼은 듬뿍 담겼다. 남자친구가 오랜 무명의 설움을 떨쳐낸, 첫 우승 순간을 TV중계로 지켜보면서 그녀가 펑펑 울었다는 대목에서는 그의 목소리도 조금은 물기에 젖어드는 듯했다.

“아시안 투어에 이어, 내년 말에는 일본 투어 도전을 계획하고 있어요. 저도 최경주 프로님이나 양용은 프로님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더 큰 도전 과정을 밟아나갈 예정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들려준 삶의 좌우명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노력하자’. 이제껏 한 번도 이 마음을 저버린 적이 없듯,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고, 한눈팔지 않는 골퍼가 되겠노라는 류현우 프로다.

 

 

 

<CLUB KPGA> 2009년 12월호

 

 

 

용인에 있는 아시아나 골프장 클럽하우스 앞에서.  ⓒ오솔길